구제금융 기업 CEO 연봉 50만 달러로 제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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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미국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금융회사의 경영진 보수가 크게 줄어든다. 일부 과다 지급된 상여금은 환수된다. 미국 정부와 의회 지도자들은 이 같은 내용의 ‘2008 긴급경제안정법(EESA)’ 세부안에 최종 합의했다. 하원과 상원은 이번 주 내에 법안을 표결처리할 예정이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구제금융법안이 최선의 희망이긴 해도 금융시장의 혼란이 조기에 종식될 전망은 없다”고 말했다.

법안에 따르면 구제금융을 받는 회사의 경우 경영진 연봉을 50만 달러로 제한했다. 이 한도를 넘는 급여를 주면 법인세가 중과 된다. 각종 보너스와 인센티브는 위험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아예 금지했다. 이미 거액의 보너스를 받은 경영진에 대해서도 목표 달성에 실패했거나 보너스 산정 기준이 잘못됐다면 정부가 이를 환수하도록 했다. 퇴직 경영진에게 거액의 퇴직금과 스톡옵션을 주는 ‘황금낙하산’도 금지됐다.

당초 정부는 급여 제한 조치에 대해 “금융사가 좋은 인재를 구할 수 없게 돼 회생만 늦어진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회사를 거덜내고도 거액의 연봉과 보너스를 챙겨간 최고경영자들에 대해 제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자 결국 법안에 포함시켰다.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중 당장 부실자산 매입에 쓸 수 있는 돈은 2500억 달러로 제한됐다. 대통령이 요청하면 1000억 달러를 추가로 쓸 수 있지만 나머지 3500억 달러는 의회의 추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부는 부실자산을 매입해 주는 회사의 주식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권리(워런트)를 확보해 나중에 기업이 살아나면 국고로 환수하게 된다. 또 정부가 집을 압류당할 위기에 처한 담보대출자의 대출 조건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정부는 구제금융법안이 통과되면 돈 빌려주기를 극도로 꺼리고 있는 금융권의 분위기가 진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금이 돌기 시작하면 치솟은 금리가 떨어지고 급작스럽게 주가가 급락해 파산해 버리는 악순환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리서치업체 글로벌인사이트의 브라이언 베튠은 “(구제금융이) 금융계에 꼭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이며 납세자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절충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비관적인 전망이 더 우세하다. 금융권의 신용경색에서 시작된 위기가 이미 실물경제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JP모건 브루스 카스먼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두 분기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 0.5%에 불과하고 내년 실업률은 7%를 넘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직장이 불안해진 데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게 된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실제로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지출은 3분기에 1% 감소했다.

이미 시작된 경제 침체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웨스트팩 스트래트지는 “그동안 발생한 다섯 차례의 금융위기를 분석한 결과 지금의 위기가 바닥을 치는 데 2년, 이후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 다시 3년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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