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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미술관 ⑤ 남산에서 만나는 스무 가지 가을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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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사랑은 달콤하다. 사랑은 돼지꿈이다. 사랑은 알에서 깨어남이다. 사랑은 돈과 현실이다. 사랑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다.

가을이 깊어 가는 남산에 가면 사랑에 대한 스무 가지의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다음달 8일까지 남산 N서울타워 앞 광장에서 열리는 ‘러브 하트(사랑의 하트)’ 전시회다. 조각가 김주호씨를 비롯한 20명의 미술가가 참여해 사랑을 주제로 한 입체 하트 모양의 작품 20점을 세웠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이 전시회는 누구나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즉석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트 엽서’를 적어 이벤트용 우체통에 넣으면 엽서도 보내준다.

전시를 기획한 이은화 예술감독은 “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콩당콩당 뛰는 가슴(heart)은 예술의 발원지”라며 “‘러브 하트’는 21세기 서울 사람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함께 찾고 묻고 답하는 ‘사랑+예술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서울시 도시갤러리 추진단이 마련한 이 전시는 다음달 10일부터 30일까지 잠실주경기장 앞에서도 진행된다. 이 기간에는 경매를 통해 작품을 판매한 뒤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할 계획이다.

서울 남산 N서울타워 앞 광장에 1.5m 높이의 하트 모양 미술작품 20점이 설치됐다. 26일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이 ‘사랑해, 사랑해’라는 작품 옆에서 ‘셀카 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빈 기자]


◆스무 가지 개성 있는 사랑 표현=1.5m 높이의 하트 작품마다 작가의 개성 있는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연인의 사랑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사랑, 크게는 인류나 세계에 대한 사랑까지 주제도 다양하다.

김주호 작가의 ‘달콤한 상상’은 백마 탄 남자와 사슴 탄 여자의 행복한 만남을 이야기한다. 빨대로 주스를 빨아먹는 사람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사랑의 이미지다. 김 작가는 “사랑의 달콤함은 아무리 생각해도 끝이 없을 것”이라며 “그런 사랑의 기쁨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현호 작가는 ‘아이 러브 밀크(우유를 사랑해)’라는 제목으로 새하얀 하트에 수백 개의 유아용 젖꼭지를 붙였다. 미국 뉴욕에서 유행하는 ‘아이 러브 뉴욕(뉴욕을 사랑해)’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은화 감독은 “지구촌 기아 문제를 얘기하는 작품으로 최근 중국산 저질 분유 사건으로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기일 작가의 ‘하트 샌드백’도 관객들에게 인기 있는 작품. 가슴이 뛰는 사랑을 권투의 샌드백에 비유했다. 스프링으로 고정돼 흔들거리는 탓에 툭툭 건드리며 지나가는 사람이 많다. 최석운 작가의 ‘럭키 드림(행운의 꿈)’에선 빨강·파랑·노랑의 돼지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입맞추며 사랑을 전한다. 이원석 작가의 ‘러브 이즈 액추얼리(사랑은 현실이다)’는 핑크빛 하트에 열쇠와 집·보석·돈·자동차의 모형을 잔뜩 매달았다.

◆소외된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도=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다섯 명은 소외된 어린이·청소년들을 찾아 함께 작업했다. 이건희 작가의 ‘하트 다이어리(마음의 일기)’는 서울맹학교 중등부 시각장애 학생들의 그림을 옮겨 붙인 것이다. 검은 바탕에 큐빅(모조 다이아몬드)을 촘촘히 박아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를 표현했다. 김연수 작가가 서울애화학교 유치부 청각장애 어린이들과 작업한 ‘만나서 반가워!’는 각양각색의 손바닥 찍기를 이용한 그림으로 순수한 동심을 보여주고 있다. 홍시야 작가와 성모자애보육원 원생들의 ‘러브=1’은 하나의 우주 공간에서 모두가 선과 선으로 연결돼 있다는 진지한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러브 하트’처럼 하나의 모형을 놓고 여러 명의 작가가 참여, 다양한 조형물로 빚어낸 전시는 국내에선 흔치 않은 실험이다. 외국에는 미국 시카고와 스위스 취리히에서 젖소 모형을 활용한 이벤트인 ‘카우 퍼레이드(젖소들의 행진)’가 대표적이다.

이은화 감독은 “‘러브 하트’는 서울시 도시갤러리 사업 공모에 자유 제안으로 당선돼 지원을 받게 됐다”며 “작가들을 섭외해 작품을 의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요즘 남산 N서울타워를 찾는 젊은 연인들 사이에는 보호 철망에 자물쇠를 달며 사랑을 약속하는 것이 유행이다. 이 감독은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는 이곳이 ‘러브 하트’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현재 충정로 2층 양옥을 개조한 전시장 ‘충정각’의 큐레이터(전시 기획자)를 맡고 있다.

주정완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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