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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올림픽] '남성우월'장막 걷고 인류 축제의 場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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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올림픽이 101일 앞으로 다가왔다. 1896년 처음 올림픽이 열린 고도(古都)에서 108년 만에 다시 열리는 전세계 스포츠 제전. 202개국에서 1만6000명이 참가하는 사상 최대 규모다. 성화가 타오를 8월 13일에 맞춰 아테네를 향한 태극전사들의 발걸음과 호흡도 빨라지고 있다. 2년 전 한.일 월드컵 때 그랬던 것처럼 국민들의 '대~한민국'함성도 올 여름을 삼킬 참이다. 중앙일보가 그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그리스에는 우리의 소주에 해당하는 독주 '우조'가 있다. 우조를 파는 술집은 '우제리아'라고 불린다. 이 우제리아에서 그리스 여성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우조의 문화에서 여성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 여행안내서에는 외국 여성들에게 우제리아의 출입을 자제하라는 충고가 실리기도 한다. 수컷 우월주의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혐의가 상당히 짙은 그리스 남성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쪽에는 고대 도시 올림피아의 유적이 남아 있다. 올림픽 경기의 발상지다. 올림피아에는 고대 올림픽 경기장이 남아 있다. 근육질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주신(主神) 제우스의 신전 터,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신전 터도 그대로 있다. 올림픽 성화(聖火)를 채화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올림피아에 가면 나는 달음박질로 고대의 경기장을 한 바퀴 돌기도 한다.

우제리아에 앉거나 올림피아 경기장에 서면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수컷 우월주의의, 퇴화되다 만 꼬리뼈의 흔적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올림피아 경기장 옆에 있는 크로노스 숲은 바로 여성과 노예들이 경기를 관람하던 곳이었다. 올림피아 경기는 남성 자유인들의 전유물이었던 만큼 여성과 노예는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숲에 숨어 구경했다.

올림피아로 들어가려면 알피오스 강에 놓인 다리를 지나야 한다. 자유인으로 가장한 노예, 남성으로 가장한 여성이 올림픽 경기장에서 발각되면 이 다리에서 밀어 강으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런 우상의 잔재가 역시 나를 편치 못하게 했다.

고대(古代) 올림픽은 그랬다. 권투.레슬링.활쏘기.칼싸움.창던지기는 살인 기술이다. 빨리 달리기, 멀리 뛰기, 높이 뛰기, 무거운 것 들기 따위는 전투의 보조 기술 아닌가. 우리는 종종 잊고 있지만 올림픽은 예부터 전투 행위와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는 모든 기술을 겨루는 무대였다. 나는 남성 우월주의가, 남성이 군역(軍役)과 노역(勞役)의 주체 노릇을 해온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인류가 건너온 역사는 조직적인 대량 살상의 시대 아니던가? 아녀자(兒女子)는 따뜻한 보호와 가차 없는 희생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아녀자를 보호하거나 희생시키던 그 시절 무사들의 빼어난 기술과 기량이 올림픽 스타디움에 모여 있었던 것이 아닌가.

*** 전세계인 하나되는 평화 한마당

하지만 다 옛날 일이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싸움터로 내몰리지 않는다. 투창 선수는 더 이상 적의 가슴을 향하여 창을 날릴 수 없고, 마라톤 선수는 더 이상 승전보를 전할 필요가 없다.

1896년 시작된 새로운 올림픽(근대 올림픽)의 역사는 황혼으로 남아 있던 남성 우월주의를 무너뜨렸다. 108년의 시간은 스포츠로 하여금 남녀 평등의 앞장에 서 있게 했고, 스포츠우먼들의 거침없는 활약은 이제 스포트라이트의 아름다운 표적이다. 냉전의 소용돌이도 겪었지만 페어플레이라는 새로운 룰과 질서 속에서 전세계인이 하나가 되는 것이 지금의 올림픽이다.

다시 아테네로 돌아간 성화는 크로노스 숲속에, 알피오스강 다리 언저리에 남아 있을지 모를 고대의 어둠마저 태워 버리리라.

◇알림=아테네 올림픽 특집으로 메이저 퀸 박지은의 골프레슨 '골프야 놀~자'는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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