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백령도 물범' 생태 밝혀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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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범은 얼음 위에서만 새끼를 낳기 때문에 북위 45도 이상의 북극권에서 발견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는데 '백령도 물범'(천연기념물 제331호)이다. 베링해.오호츠크해 등 주요 군집지에서 벗어나 홀로 북위 38도 이남에서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해양 포유류 학자들은 이들의 생태에 주목하고 있다. 300~500여마리의 백령도 물범은 겨울이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듬해 봄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들의 번식지가 어디이며, 이동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왔다.

여기에 의문을 품고 KBS 자연다큐멘터리 팀이 추적에 돌입한 게 13개월 전. 해양포유류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국립 해양포유류연구소 부르카노프 박사가 동참했다. 그리고 바다에서의 숱한 위기를 넘기며 백령도 물범의 이동 루트를 세계 최초로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5일 밤 10시 방송되는 '서해의 마지막 제왕-백령도 물범'은 다큐멘터리를 넘어 그 자체가 한 편의 논문이다.

제작진은 지난해 10월 백령도에서 물범 세 마리를 잡아 60g의 초소형 위성 위치추적기를 부착했다. 이렇게 밝혀낸 물범의 겨울 서식지는 중국의 보하이(渤海) 만. 이들은 서해안 해안선을 따라 중국 다롄(大連) 부근 보하이 만 앞바다의 섬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다. 물범들은 1~2월 번식기를 거쳐 새끼를 낳지 않은 물범은 3월이면 백령도로 내려오고, 새끼를 낳은 개체들은 6월께 남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범이 거쳐간 길은 왕복 4000리(1600㎞)에 달한다. 제작진은 또 백령도 물범의 유전자가 북태평양 물범과 다르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오랜 고립이 빚은 결과다.

그러나 물범은 위기를 맞고 있었다. 유일한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인간'때문이다. 군사지역이라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우리와 달리 중국에선 밀렵꾼들이 은밀히 활동하고 있었다.

중국 보하이만에서 태어나는 물범의 절반 이상이 약제나 박제용으로 밀렵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서호 PD는 "고아가 된 새끼 물범들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서로의 젖을 빠는 안타까운 장면도 목격됐다"며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우리나라와 중국 정부가 함께 보존대책 마련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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