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美오츠의 "좀비"등 5권 번역.소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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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중소설보다 작품성을 갖춘 소설이 독자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얻는 현상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대중소설이 특히 강세를 보이는 미국에서조차 올 여름엔 추리물들이 대량으로 반품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국내에 번역 소개된 외국소설도 흥미보다 작품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장르도 심리소설.동화소설은 물론 지식 을 전달할 목적으로 쓰여진 소설까지 매우 다양하다.
지난해 『마음가는대로』로 국내 독자를 처음 만난 이탈리아 소설가 수산나 타마로의 신작 『마법의 공원』(이기철 옮김.고려원)은 동물들의 눈을 통해 인간세계의 부조리를 따끔하게 꼬집고 있는 일종의 동화소설이다.주인공인 소년 닉은 태어 나자마자 길에 내버려졌다가 동물원 늑대에 발견돼 동물들의 보살핌으로 자란다.얼굴은 사람 모습이지만 심성은 늑대인 닉의 눈을 통해 기계문명의 부작용과 자연파괴를 고발하고 있다.동물들간에 오가는 우정과 사랑과 이별의 장면도 감동적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미국의 여류 소설가 조이스캐럴 오츠의 『좀비』(최인자 옮김.버팀목)와 프랑스 여류소설가프랑수아즈 사강의 『지나가는 슬픔』(강금희 옮김.김영사)은 인간 내면세계의 흐름을 훌륭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
『좀비』의 경우 전세계를 경악시켰던 미국의 살인마 제프리 다머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대학교수이기도 한 오츠는 자칫 추리나 범죄소설로 빠지기 쉬운소재를 갖고 현대인의 인간성 상실 위기를 고발해내는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소설 속의 주인공 퀘틴이 저지른 범죄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잔혹하지만 그런 사건 뒤에 평범한 가정과사회가 존재함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범죄도 미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사강의 『지나가는 슬픔』은 94년 프랑스 문단에서 그녀의 출세작인 『슬픔이여 안녕』이후 최고의 걸작으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 마티유라는 40세된 소르본대 출신의 건축가가 폐암 선고를받던 날 하룻동안 일어난 일을 통해 40년 삶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주인공이 되돌아보는 수많은 인간관계에 얽힌 심리분석이 예리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지니고 있다.
「X세대」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소설가 더글러스 커플런드의 『신을 찾아가는 아이들』(권정희 옮김.문학동네)은 X세대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엿보게 한다.이 작품에서 X세대는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허상이나 별종이 아니라 허물어진 종교적 믿 음을 대신할가치를 찾아 헤매는 진지한 「구도자」로 그려진다.
이 작품은 주인공 「나」가 직장을 버리고 정신적 방황을 겪는여정에서 일어난 여덟개의 짤막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성장기에서 이혼까지 다양한 경험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낸 일종의연작소설이다.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소설가인 존 다르 램버트의 『인간의 시작』(햇살과 나무꾼 옮김.아름드리)은 소설형식을 빌려 1백50만년에 걸친 인간의 진화과정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소피의 세계』이후 소설에 지식과 정보를 담으려는 세계 문단의 흐름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작가의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한 것이어서 고생물학.인류학.고고학.사회학.여성학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골고루담고 있다.인류의 삶과 종족보존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역할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적 시각이 강하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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