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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인생] 國弓 만들기 50년 권영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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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권영덕씨가 마을 뒷산에서 화살을 걸어 시위를 당겨보고 있다. [조문규 기자]

▶ 초기에 다듬은 대나무.

▶ 대나무 안쪽에 붙일 쇠힘줄.

"조상 대대로 물려 온 가업을 잇다 보니 벌써 50년이란 세월이 흘렀어요." 지난 50년간 전통 활(國弓)을 만들어 온 권영덕(權寧悳.66.경북 영주시 하망동)씨. 마당 한쪽의 나무토막에 쪼구려 앉아 대나무 조각을 다듬기에 여념이 없다.

평상에는 수리.제작 중인 활이 가지런히 널려 있고 솥에서는 민어 부레풀이 끓고 있다. 그는 12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11대조 안동 권씨 '계황'할아버지 때부터 활을 만들어 온 것이다. '역대 궁장(弓匠)계보'가 그 증명이다. 이 계보에는 6대조 '희직' 할아버지가 조선 영조(1724~1766재위)때 궁장 공로로 '교위용장'직위를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교위용장은 지금의 인간문화재에 해당된다.

국내 활 제작자는 8~9명. 이들 중에서도 그는 가장 오랜 경험을 가진 '고참'이며, 이 가운데 3명은 그의 친인척이다. 20세 때부터 활을 만든 6촌 형 영우(66.강원도 원주), 사촌동생 무석(63.서울)씨 등이 활동 중이다. 아버지 대(代)이후 활을 만들던 사촌형 영호.장조카 오규씨등은 모두 작고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활을 만드는 아버지(태선) 모습을 보며 자랐다. 10살때 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맏형 영록씨가 뒤를 이었다. 평생 활을 만들어 인간문화재(제47호)였던 영록씨는 1987년 72세로 작고했다.

6.25전쟁으로 초등교만 졸업한 그는 16세때부터 활 만들기에 뛰어 들었다. 대나무.참나무.물쏘뿔.쇠힘줄 등 재료를 깎고 다듬고 자르고 붙이기를 하루에 수천번. 커다랗게 손에 박힌 굳은 살은 아직도 그대로다.

"활은 균형이 생명인데다 재료.기술.정성 3박자가 잘 어우러져야 탄력성이 우수한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

"활 만드는 재주 밖에 없어 농사 등 다른 일은 거들떠 보지 않고 천직으로 삼았지요."

그가 1년에 만드는 활은 고작 50여장(활의 단위). 전국에서 활을 쏘는 무사(武士)들이 주문하는 물량이다. 1장을 만드는데 100여일 걸린다.이렇게 만든 활 1장에 50만원이다. 인건비 정도 남는 금액이다.

그는 전국의 활쏘는 정자(亭子)를 돌아다니며 궁도사범 노릇을 했다. 활쏘는 재주가 남못지 않기 때문이다. 22년전 영주에 정착하기 전 10년가량 고향 예천을 떠나 전국을 떠돈 것은 이 때문이다.

오랜 세월 장인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부인 김동순(62)씨의 도움이 컸다. 넓적한 쇠힘줄에서 기름기를 제거하고 넓게 편 뒤 두들겨서 가닥가닥 실처럼 뽑아내는 일은 김씨의 몫이다. 김씨는 결혼생활 42년간 7자매를 키우며 이 일을 해왔다.

그에게도 안타까움이 없지 않다. 전수자를 자식 중에 두지 못한 것이다. 이런 안타까움을 그나마 씻어 준 것이 처남 김동만(56)씨. 10여년간 그의 밑에서 기술을 배운 김씨는 경남 고성에서 활을 만들고 있다.

그의 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다르다.

"옛 선비들이 활을 가까이 하여 수신(修身)의 한 방편으로 삼아 숭상해온 것은 바로 활에 선비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장인 정신과 선비정신이 없지 않습니까."

활 만드는 기술을 배우려면 적어도 5년은 걸린다고 한다.

플라스틱.카본 등을 사용한 국궁이 만들어지는 것도 못내 아쉽다. 우수한 전통의 맥이 끊어지지 않을 까 하는 걱정에서다.이 개량 활은 200m 정도 날아가는 국궁에 비해 탄력성과 활쏘는 묘미가 떨어진다.

그는 인간문화재가 되는 게 여생의 꿈이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달려 활 만들기가 쉽지 않아 그의 희망은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그는 "스스로 인간문화재로 지정해달라고 보챌 수는 없지 않느냐"며 경북도.중소기업청 주최의 공예품 경진대회에서 수없이 탄 상장을 내보였다.

황선윤 기자

◆ 어떻게 만들어지나=전통 활은 탄력성과 균형이 생명. 그래서 탄력성이 크고 질긴 재료가 사용된다.

우선 대나무(길이 90㎝,두께 6mm)를 구워서 반대로 구부려 평평하게 만든다. 이 대나무 양쪽 끝에 대나무와 같은 두께의 뽕나무(30㎝)를 끼워서 연결해 둥글게 만든다. 대나무 안쪽 중심에는 두께 1.5㎝,길이 17㎝가량의 참나무를 붙인다. 대나무 바깥쪽에는 얇게 켠 물소뿔(길이 45㎝)을 양면에 각각 붙인다.

이어 대나무 안쪽에는 쇠힘줄에 민어부레풀을 배합해서 10번 정도 겹겹이 붙인다.

민어부레풀은 민어의 부레를 10시간 정도 끓여 만든다.

대나무.쇠힘줄.물소뿔.민어부레풀은 시위가 벗겨져 뒤집어 지더라도 활이 부러지지 않게 하고 탄력성을 그대로 유지해준다.

활의 상태가 갖춰지면 20여일간 말린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숯불로 열을 쐬어 가면서 조절한다.

마지막으로 일정한 두께의 자작나무 껍질과 손잡이를 붙인다. 자작나무 껍질은 습기를 방지해줄 뿐만 아니라 궁력(弓力)이 떨어지지 않게 도와준다.

둥글게 완성된 활을 뒤집어 시위를 연결하면 '3'자모양의 활이 된다 예전에는 시위 재료로 명주실을 썼다. 지금은 타이어속에 사용하는 특수실을 쓰기도 한다.

활을 1장 만드는데는 100여일이 걸리며 한꺼번에 수십개를 만든다.

화살은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다. 활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탄력성이 유지되도록 시위를 벗겨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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