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장마끝 반가운 햇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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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의 햇살이 눈부시다.가을이 아닌데도 높은하늘,맑은 공기,밝은 햇빛이 상쾌하다.장마비가 계속 내리다가 날이 들면 게으른 나의 마음을 햇볕이 바쁘게 한다.다시 못 볼햇볕도 아닌데 붙잡고 싶어진다.장롱문을 활짝 열어 바람이 들어가도록 하고,이불과 요를 내다 널었다.날마다 하는 빨래지만 오늘만큼은 있는 거 없는 거 다 끄집어내 빨아 널고 싶다.남편과두 아들이 운동을 좋아하는 까닭에 다른 어느 집보다 빨래량이 많다.이미 아침에 한벌 속옷까지 벗어놓고 출근하는 남편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빨랫줄이 모자라 연립주택 앞마당에 건조대를폈다.세탁기에 빨 것과 손빨래할 것을 분류해 빨래를 했다.행주부터 삶아 빨아널고 속옷과 수건을 삶아 빨고 그 다음 걸래를 빨아 널었다.남은 비눗물로는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청소,그 다음욕조와 거울,대야,화장실 바닥,변기를 닦았다.햇빛이 들어와도 부끄럽지 않도록 박박 닦았다.뜨거운 비눗물로 알뜰하게 닦으니 타일 바닥이,변기가, 거울이 반들반들 빛난다.햇빛이 들어올수 없 는 목욕탕에 햇빛을 들여놓을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목욕탕에 있는 물건들을 깨끗이 닦아 햇볕이 드는 앞베란다에 널었다.비눗곽,세제병,샴푸병,솔,슬리퍼,빨래판까지 햇볕에 말리고 창문과 들어가는 문을 열어 바람이 들어가도록 했더니 맨발로 들어가도 보송보송 햇빛이 들어간 자국이 엿보인다.계속되는 장마로 집안의퀴퀴한 냄새도 햇볕과 바람이 거두어 갔다.아! 이 상쾌함.어느새 때도 거른 오후가 됐다.벌써 바싹바싹 마른 빨래를 개며 햇볕의 고마움을 새삼 느낀다.내 마음의 찌든 때도 빨아 널면 햇볕이 거두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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