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쓰는가정문화>6.장손으로 딸 둘 키우는 이형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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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아들 낳은 경험이 마치 무용담처럼 떠도는 우리 사회에서 두 딸의 아빠로 자랑스럽게 살아가기란 아직도 만만찮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90년 둘째딸 출산과 함께 비슷한 처지의 회사 동료들을 모아일명 「딸딸이 클럽」을 만든 뒤 『딸 둘을 키우는 것은 신이 주신 특혜』라는 주장을 주변에 펼치는 이형진(37.동양제과 영업기획부)씨는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무모한 사람 인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결혼의 의미가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데만 있는듯한 풍조에 반기를 들고 싶었습니다.아내에게 계속 출산을 강요한다든가,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인공유산을 시키면서까지 아들을얻어낸다고해서 가정내 삶의 질이 높아지는 건 결 코 아닙니다.
』 장남에 장손인 이씨는 이처럼 올곧은 주관이 있었기에 못내 아쉬워하는 부모님과 아내를 설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
『회원중에 딸둘로 마치려다 뒤늦게 셋째 아들을 본 사람이 있어 탈퇴시킨 적이 있습니다.하지만 마치 막내아들을 위해 두 딸이 존재하는 듯한 집안 분위기에서 딸들에게든,아들에게든 바람직한 자녀교육이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이씨는 그래서 두 딸을바르게 키워내는 일에 더욱 큰 책임감을 느낀단다.남자들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는 불합리한 사회속에서 떳떳이 한 몫을 담당하려면 자기 주장이 뚜렷한 여성으로 자라야 한다는게 이씨의 생각.
그래서 이씨는 몇년째 9 시뉴스를 딸들과 함께 시청하면서 두딸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깨우쳐주고 있다.
이런 그에게 「전염」된 탓인지 적어도 이씨의 직장에선 누가 딸을 낳아도 『섭섭하겠다』는 인사말조차 건네지 않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정착됐다고.
이씨를 비롯한 「딸딸이 클럽」회원들은 평소 남보다 훨씬 많은적금을 부어 퇴직후 전원속에 모여서 서로 의지하며 살 노후를 설계하고 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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