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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2차 냉전시대를 원하겠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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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무력 충돌은 제2의 냉전을 예고하는 것인가? 아니면 러시아가 냉전 종식 이후의 국제질서를 재정립하기 위해 서방에 도전장을 내민 것인가. 러시아는 옛 소련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미국 동맹국 공격’이란 강수를 통해 노골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에 도전했다. 그루지야에서 일어난 전쟁은 미국이 세계 질서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재앙 같은 전쟁에 빠져있고, 이란의 혁명적 정치제도와 맞설 수 있는 최소한 한 번 이상의 기회를 놓쳤다. 또한 러시아의 문턱까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확장시켰으며,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반발하는 러시아를 거만하게 무시해 왔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과 같은 중앙아시아까지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했고, 이는 러시아로 하여금 서방에 포위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는 미국의 적대국인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동맹을 맺기 시작했다. 또한 중동에서는 미국을 밀어내고 과거의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최근 러시아를 방문했는데, 이는 시리아와 러시아의 새로운 동맹관계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미국의 대이란 추가 제재안에 계속 반대하면서, 이란과 다방면에 걸친 에너지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또 이란에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는 첨단 무기를 판매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라크에도 부채를 줄여주고 공동 유전 개발에 합의했다. 냉전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범대서양 동맹이다. 미국의 나토 확장정책은 동맹국 모두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은 제2의 냉전을 바라지 않는다.

유럽의 에너지 공급원을 러시아에서 이란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미국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는 것이다. 냉전 시대로의 회귀는 서방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 러시아를 주요 8개국(G8)에서 축출하거나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저지하는 것은 러시아의 고립감을 키울 뿐이다. 이는 러시아의 권위주의를 강화할 것이고, 러시아가 옛 소련권은 물론 그 밖의 지역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산적한 국내 문제와 광범위한 국경 지역에서의 불안정성이란 고민을 안고 있는 러시아도 제2의 냉전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중국과의 국경협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급팽창하는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원자재에 대한 갈증을 품고 있는 강대국 중국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하고 있다.

그루지야 사태가 보여줬듯 경제가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보증수표는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도 계산된 위험만을 감수한 그루지야 전쟁과 서방과의 전면적 대결로 최근 몇 년간 이룩한 엄청난 경제성과를 위험에 처하도록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루지야와의 작은 전쟁만으로도 러시아는 1998년 금융 붕괴사태 이후 가장 큰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일주일 만에 170억 달러(약 19조3800억원)가 러시아 시장에서 빠져나갔다. 러시아 주가지수는 8월에 15%나 떨어졌고,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외국인 투자가 25%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는 미국과 진정한 전략적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은 러시아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거나 무시당할 경우 큰 훼방꾼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러시아는 서방과의 대결이 아닌 협력관계 속에서 국제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새로운 국제질서 속으로 편입돼야 한다.

슐로모 벤아미 전 이스라엘 외무장관
정리=김민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