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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불량식품’책도 마음의 양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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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나, 쫀드기, 뿌셔짱, 쵸코 동부, 오부라이트, 아폴로…. 이름만 들어도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옛날과자, 이른바 불량식품들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불량식품’이라는 것을 먹은 사람은 건장한 어른들이 아닌 어린이였으며, 판매한 장소는 음습한 뒷골목이 아니라 학교 앞 문방구였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이런 것을 먹었다 하여 중병에 걸리거나, 하늘나라로 간 아이가 있다는 ‘대한 뉴우스’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고기 먹고 탈 나고, 술 마시고 병나고, 뇌물 삼키고 혼난 어른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쉬지 않고 들린다.

▶ 달고나·쫀드기도 읽고 유기농도 읽어봐야 제 입맛·체질 알 수 있어

책을 양식이나 먹거리에 비유하는 나는 어린이 책을 말함에 있어 ‘참 좋은 책’과 ‘절대 나쁜 책’으로 딱 갈라서 선별하기를 주저한다. 그것은 어른의 눈과 머리로 판단하는 좋고 나쁜 책을 어린이에게 그대로 적용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출판 시장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한 1999년을 기점으로 지난 5년간 교보문고의 판매수치표를 보면 이런 생각이 아주 그르지 않다. 5년 동안 가장 판매가 ‘고르게’ 많이 된 19권의 책 중 여섯권을 펼쳐본다.

똥·오줌·방귀 등 어린이들이 말만 들어도 까르르 웃는 소재의 이야기가 유행처럼 번질 즈음에 유쾌한 이야기, 보기만 해도 신나는 삽화로 엮어진 동화. 배설물 소재의 어린이 책 중에서 선두를 달리는 『똥이 어디로 갔을까』(창비어린이). 어린이문학이라는 장르에 문학의 힘을 실어 어른들의 호평을 더 많이 받으며 페미니즘 문제까지 거론케 하는 등 베스트셀러가 되어 해외에 저작권 수출이 된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 국민소설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의 애독소설 중 하나인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동화책으로 만들어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아이들에게는 소설을 읽는다는 자부심을 갖게 한 『소나기』(다림).

▶ 『똥이 어디로 갔을까』에서 주인공 ‘단후’가 숲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 모습.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삽화다.

어린이들은 악마처럼 생각하지만 부모들은 우상처럼 여기는 학문, 수학.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즐거운 삽화, 재미있는 용어 사용 등으로 부모가 더 좋아하는 번역책 『수학귀신』(비룡소).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과 미래는 건강한 이야기로 풀어 가는 장애어린이 주인공의 동화. 우리들이 관심 두지 않았던 분야의 동화에 눈 돌리게 만들어 준 『아주 특별한 우리 형』(대교). 현실적이며 재미있는 어린이 경제서. ‘모두 부자 되세요!’ 라는 전국민적 구호에 발맞추듯 어린이들에게도 부자 신드롬을 일으키고, 어린이 경제책 붐을 일으킨 번역책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을파소).

아주 간단하게나마 책으로서의 긴 생명력을 가진 여섯권의 책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 책들이 오랫동안 생명을 보존하는 이유는 뭘까? 많이 팔린다 하여 모든 어린이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어른들 세계에서 품질 100% 보장의 인증 심의를 통과했다는 것일까? 문제는 이것이다. 베스트셀러라는 이런 책들을 어린이들만이 좋아해서 스스로 구입하거나, 혹은 어른들만이 좋아해 책방으로 간 것이냐는 것이다. 물론 어떤 책은 순전히 어른이 좋아해 아이들에게 억지로, 또는 꾀어서(?) 읽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어른들이 갈채를 보내는 책일지언정 그 판매나 관심도가 오래 갈 수는 없다.

책에도 달고나·쫀드기·오부라이트가 있으며, 고단백 식품이나 유기농 음료, 청정 농산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두 달이 아닌 몇 년이 지나도록 독자가 찾는 책들 앞에서 우리는 성분 분석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어른이 되는 동안 수많은 음식을 먹으며, 제 입맛을 찾고, 자기 체질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왜 그렇게 빠지는지 눈길을 돌려야 하며, 또 좋은 책이라고 여겨지면 아이들 손에 조금은 억지로라도 들려줘야 한다.

그럴 때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좋은 책은 5년, 10년 제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이다.

노경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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