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전산망 뚫은 고졸 해커 국민은행 최연소 임원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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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터넷이 보편화하기 전인 1993년 금융전산망 해킹으로 6개월의 실형까지 살았던 인물이 최연소 국민은행 임원이 됐다. 주인공은 19일 임원급인 국민은행연구소장으로 임명된 김재열(39)씨. 국민은행에서 그와 비슷한 또래는 아직 과장이나 차장이 대부분이다.

물론 일반 기업에선 20~30대가 임원에 발탁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하지만 보수적인 은행에서 30대 임원의 등장은 국민은행 직원들도 놀랄 정도로 파격적이다. 특히 은행의 연구소장 자리는 박사학위 소지자거나 경제계의 명망가가 아니면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직책이다. 그런데 김씨의 최종 학력은 88년 순천고등학교 졸업. 그가 석·박사 연구 인력만 60명, 조사원까지 합치면 100명을 거느리는 연구소의 장을 맡은 것이다. 그렇다고 김씨가 경제계에서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다.

해킹 사건 이후의 경력은 다채롭다. 94년부터 대우그룹 기획조정실과 회장비서실에서 기획·전략 업무를 맡았다. 여러 곳에서 취업 제안이 들어왔는데 평소 해보고 싶었던 기획 업무를 제시한 대우그룹을 선택했다고 한다. 김씨는 “해킹 사건 당시 부장검사였던 정홍원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이 ‘능력이 아깝다’며 여러 회사를 소개해 줬다”며 “정 이사장은 지금도 든든한 후원자”라고 말했다.

98년엔 개방형 공무원 임용시험에 응시, 3년간 기획예산처에서 정부개혁실 사무관, 정보화담당 보좌관으로 일했다. 2001년부터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상무로 전략·기획·컨설팅 업무를 맡다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대주그룹 경영전략실 부사장으로 일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동북아경제중심지추진위, 금융허브추진위, 국가균형발전전문위 등 각종 정부 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국민은행 고위 간부들은 “그의 선임 배경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강정원 행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김씨 스스로 강 행장과의 인연을 확인했다.

그는 “딜로이트에서 서울은행(하나은행과 합병) 컨설팅을 진행하다 당시 행장(2000년 5월~2003년 12월)이던 강 행장과 알게 됐다”며 “ 그게 인연이 돼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김씨가 스승으로 모시는 인사 중에선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90년 3월~92년 2월 재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있다. 김씨는 “동화은행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뒤 쉬고 있던 김 수석에게 컴퓨터를 가르친 게 인연이 돼 정 총장 등과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 경험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직업이 몇 번 바뀌어도 일관되게 기획·전략 업무를 맡아 온 데다 관련 논문도 7편이나 발표했다”며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연구소 일도 잘해내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김영윤 국민은행 홍보부장은 “강 행장이 김씨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김준현 기자

▒바로잡습니다▒

◆김재열 국민은행연구소장은 1993년 해킹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 아니라 구치소에 있다 집행유예로 석방됐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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