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중 외교 바른 자세로 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일본 정계 ‘비둘기파’의 대부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71·사진) 중의원 의장이 정계 은퇴를 앞두고 18일 일본의 젊은 정치인들에게 “한국·중국과의 외교를 바른 자세로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19일 보도했다. 고노 의장은 1993년 관방장관 시절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고노 담화’의 주역이다. <본지 9월 18일자 33면>

그는 이날 밤 지역구인 가나가와(神奈川)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정계 은퇴 공식 기자회견에서 젊은 정치인들에게 “히로시마(廣島)는 (원자폭탄) 피해자지만 일본이 가해자의 입장이라는 점도 공부했으면 좋겠다”며 “특히 한국·중국에 대한 외교 자세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올바른 자세로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젊은 정치인들에게 역사의식을 갖고 아시아 외교에 나서라고 주문한 것이다.

고노 의장은 이전부터 태평양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이들 중 상당수가 일제의 가해 사실은 망각한 채 보수·우경화 성향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우려해 왔다. 정계 은퇴 공식 기자회견에서 그가 다시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은 다음달 26일 총선거를 앞두고 보수화 바람이 불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그는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군이 개입했다는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93년 ‘고노 담화’에 대해 “매우 중요한 담화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위안부들은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되고, 이송되고, 관리됐다”며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심정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 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돼 보수 우익 정치인들이 책임을 회피하려 할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했다. 지난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가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었다”며 이 담화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나왔던 데 대해서도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는 “담화를 부정함으로써 미국에서도 문제가 됐고 아시아·네덜란드 등에서도 논란이 됐다. 그때 ‘일본에서 정치는 무엇이냐’라는 말을 듣고 매우 유감스러웠다”고 밝혔다.

67년 처음 당선한 14선 의원인 고노 의장은 고노 이치로(河野一郞) 전 농림상의 뒤를 이은 2세 정치인이어서 자칫 ‘도련님 정치인’으로 현실에 안주할 수 있었지만 어려운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76년 록히드 뇌물 사건이 터지자 “자민당의 금권정치를 개혁해야겠다”며 탈당해 외부에서 개혁을 주도한 뒤 86년 복당했다. 2002년에는 C형 간염 치료를 위해 아들 다로(太郞·45) 중의원으로부터 간 생체 이식을 받았다. 고노 의장은 “생명을 새로 얻었다는 생각에 6년간 의장을 맡아 열심히 일했다”고 회고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