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도 없이 이사 가는 처량한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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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국민의 변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한 잘못이지요."

30일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얼굴은 날씨만큼이나 침통해 보였다. 총선에 참패한 민주당이 드디어 이삿짐을 꾸리고 기약없는 떠돌이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2000년 1월 20일 민주당 창당과 함께 입주했던 여의도 당사를 임대료 등을 내지 못해 결국 비워주게 된 것이다.

이날 오전 민주당사 앞. 소파와 책상 등 집기들이 어수선하게 늘어놓여 있고, 중소형 트럭들이 이를 실어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건물벽을 따라 길게 내리워진 '민주당이 국정안정에 앞장서겠습니다'라는 대형 플래카드만 을씨년스럽게 펄럭이고 있었다. 여당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이후 극심한 내분 속에 분당과 총선 참패로 이어진 비운의 당사다.

당사 안 사무실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사무집기들이 가득했다. 일부 당직자들만 나와서 나머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 사무처직원은 "피눈물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무처 요원은 지난 4.15 총선 후 구조조정 작업이 시작되면서 이미 대부분 그만 둔 상태다. 지난 27일 사무처 해단식이 열린 당사 4층 회의실은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이들의 퇴직금은 남은 당 자산과 선거관련 반환금으로 충당될 예정이다.

아직 새 당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급한 대로 국회 사무실로 살림을 옮겼지만 처량하기 그지없다. 국회 사무처와 다른 당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5월 말엔 정말 거리에 나앉을 형편이다. 지난주부터 여의도의 사무용 건물 3곳을 후보지로 지목, 건물주를 직접 면담하는 등 당사 이전을 서둘렀지만, 건물주들이 정당 당사의 입주를 꺼리는데다 민주당의 재정 형편이 최악의 상태라는 점 등 때문에 계약을 하지 못했다.

16대 총선 당시 확보한 국회 공간은 법적으로 5월 15일 ̄5월 말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일단 대표실과 대변인실, 총무지원팀.원내지원팀만 국회로 들어갔다. 나머지 정책과 민원파트는 밖에다 마련 중이다. 우선은 남은 기간 동안 국회사무처와 열린우리당.한나라당 등에 국회 내 공간 마련을 위해 읍소할 예정이다.

한 대표는 "대표실에서 몸만 빠져나왔다"며 씁쓸한 표정이었다. 다음은 한 대표와의 단독 인터뷰.

-당사문제는 어떻게 되나.

=현재는 5월 말까지 지금 쓰고 있는 국회내 공간을 사용 가능하다. 그동안 정식으로 국회사무처와 열린우리당,한나라당등 교섭단체들과 협의해서 공간 확보할 것이다.

-사무처 요원들은?

=필요한 사람은 남기겠지만 가능한 한 새로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진용을 짜려고 한다.민주당의 남은 자산 처분하고 6월 중순이면 선관위에서 민주당 몫으로 나오는 돈이 있다는데 그거 합하면 일단 당직자들 퇴직금은 해결이 가능할 것 같다.

-당사 떠나는 소회는.

=권력의 무상을 느낀다. 우리가 야당으로 시작해서 여당되고 또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는데 그러다 다시 야당으로 전락하고 또 권력잃고 당사까지 떠나게 됐다. 총선패배가 이를 앞당기는 결과가 된 셈이다.

-6.5재보선에 의미를 두고 있던데.

=재보선을 통해서 전통적인 표밭에서 승리를 거둬서 재기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호남지역을 말한다. 그 지역 분위기는 괜찮다. 지난번에 표를 안 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상당히 어려운 시기에 당을 이끌고 있는데 어려움은?

=당원들의 사기저하가 가장 큰 문제다. 민주당 재건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나서야하는데 그게 가능할 지 모르겠다.

-당선자들의 거취 문제가 계속 오르내리는데.

=원칙적으로 개인들 결정에 따라 하겠지만 일단 민주당 살리는데 힘을 합치자는데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재보선에서 실패할 경우는 어떻게 되나.

=승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승리하고 난 뒤에는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라든지 당의 공천을 걸고 나가는 선거마다 국민의 심판을 제대로 받기에 최선 다할 것이다.

-당세 확장 등을 위한 영입 계획은.

=영입은 해야 한다. 의원수를 늘린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라 선거에 대비해서 엘리트군을 충전하는 방향이다.

-민주당 지지층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난 총선 때 국민 속에서 전향됐던 변화의 목소리를 감지못한 지도부의 한사람으로서 이번 총선결과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낀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충정을 민주당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서 지지자들의 전폭적인 협력 구하는 방향으로 체제 정비하고 정책개발해서 국민의 지지받는 민주당이 되도록 최선 다하겠다. 많이 지지하고 도와달라.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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