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통예술기행>2.로코코에서 아르 누보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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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대로마 이후 17세기까지 기독교의 영향으로 유럽 저금통의 모습은 교회벽에 붙어있던 헌금통이 거의 대부분이었다.그러나 18세기 들어 귀족과 특권계층이 교회로부터 권력과 부의 대부분을이전받으면서 저금통의 역사도 바뀌게 된다.
대다수 순수 미술가들이 왕실이나 이들에게 전속돼 귀족취향의 시각적인 장식을 고안하기 시작했다.기존의 웅대하고 장엄한 바로크양식에서 벗어나 경쾌하고 아기자기한 색채와 선의 로코코양식이귀족들에게 선호된 것.
로코코양식은 프랑스에서 출현해 유럽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장식미술품 저금통의 효시가 된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특히 귀부인들이 미용실 등에서 팁을 넣었던 1800년께의 저금통은 당시의 호사스러움을 잘 보여준다.
〈위 오른쪽 사진〉 19세기 들어 산업혁명을 통한 급속한 사회변화와 1851년 영국 런던에서의 첫 만국박람회는 디자인의 중요성과 장식적인 미술공예품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과거의 순수미술 또는 특정인을 위한 예술 개념에서 벗어나 장인적인 미술에가치를 부여하는 산업디자인시대로 넘어가는 전기가 마련된 것.
그 대표적인 양식이 간결함과 우아한 장식선을 동시에 표출시킨「나폴레옹3세」 양식이다.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당시 유럽의 산업변화를 폭넓게 주시,디자인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유치해 프랑스산업을 전세 계에 과시하는계기로 삼았다.그 결과 「Made in France」 장식미술품은 세계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최상품으로 꼽히게 됐다.간결하고 지적인 섬세함과 우아한 귀족풍을 함께 담고있는 나폴레옹3세양식은 유럽 장식사에서 커다란 비 중을 차지함은 물론 본격적인장식미술품 저금통 시대를 열었다.
〈아래 사진〉 1차대전 직전까지 약4천만 인구중 1천5백만명이 저금통장을 지녔을 만큼 프랑스의 높은 저축열은 지배층의 화려하고도 저축정신을 담은 다양한 형태의 예술적 저금통을 출현시키는 배경이 됐다.
한편 19세기말에서 1차대전 직전까지 건축및 미술에서 유럽전역에 폭넓게 확산된 아르 누보(Art Nouveau),즉 신미술운동은 예술적 저금통의 역사에 화려함을 더했다.건축.조각.회화는 물론 식기 디자인에까지 도입된 아르 누보 양 식은 환상적리듬을 주는 곡선을 통해 생동감있는 이미지를 그려내는게 특징.
현재까지도 파리의 지하철이나 아파트 입구등 시내 도처에서 아르누보 양식을 만날 수 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저금통은 여러 형태가 있으나 아르 누보 문양의 수공예 저금통은 세계적으로 희귀하다.상업은행이 수점 소장하고 있어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백성현<명지전문대교수.미술사학> ◇다음회는 「산업디자인이 담긴 저금통」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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