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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 한달 성적표] 고속철 빈자리 넘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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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회사원 진태수(33.서울 수유동)씨는 조만간 서울 집을 팔고 가족과 함께 직장(천안시 직산읍) 인근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그동안 무궁화호로 통근해 오던 진씨는 고속철 개통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딱 한번 타본 뒤 너무 불편해 아예 이사를 결심했다.

"직장에서 고속철 천안-아산역까지 1시간이나 걸려요. 또 편도 요금이 1만1400원으로 무궁화호의 두배가 넘지요. 게다가 천안-아산역에서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100여m를 걸어야 하는 것도 짜증나더군요."

경부선 일반열차 운행횟수마저 70%까지 줄어들자 결국 그는 통근을 포기한 것이다. 고속철(KTX) 개통 한달-. 그러나 처음 내본 월간 성적표는 당초의 기대수준을 훨씬 밑돌고 있다.

개통 전 철도청이 예상한 1일 평균 승객은 15만명, 수입은 45억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루 평균 7만1396명의 승객을 태워 22억3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실적은 기대의 절반에도 못 미친 셈이다.

◇빈 좌석이 거의 절반=고속철의 평균 승차율(이용 승객수/좌석수)은 59.9%로 새마을호.무궁화호 등 일반열차의 71%보다 크게 낮다. 그나마 열차 편수를 당초 목표보다 줄인 결과다. 승객 수요가 많은 주말에는 70~80%까지 올라가지만 평일엔 지난 1일(개통일) 49%에서 26일 51.6%, 27일 46.4% 등으로 시간이 지나도 높아지지 않고 있다.

노선별로는 경부선이 67.8%인 반면 호남선은 38.1%에 불과하다. 호남선은 좌석 세개 중 한개가 빈 상태로 운행되는 셈이다. 평일만 따지면 호남선의 승차율은 20%대로 더 낮아진다.

◇왜 안 타나=철도청은 교통수요 변화에 시간이 걸린다고 보고 있다. 또 불황으로 전체 교통수요가 감소(11%)한 것도 한 요인으로 꼽는다.

철도청 관계자는 "개통 직후 잦은 고장으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다 보니 승객이 목표치보다 적었다"며 "외국에서도 개통 초기 승차율이 낮았다가 몇달 후 정상화됐다"고 말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연계교통망, 시설, 서비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천안-아산 등 일부 역은 버스.택시의 연계교통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이용객들의 불편이 크다. 특히 호남선 익산역은 택시기사들의 반발로 직행버스가 서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주.군산 등 인근 도시 주민들은 대부분 고속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중앙대 도시공학과 이용재 교수는 "지자체의 고속철 연계 교통수단이 아직 미비해 도로 이용자들이 자동차의 편리성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좌석이 새마을호보다 불편하다는 점도 승객들로부터 외면받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채산은 맞나='단군 이래 최대 역사'인 고속철에 들어간 금액은 총 13조4000억원. 이 중 부채가 10조7000억원이다. 철도청은 2007년부터 흑자를 내고 2017년엔 부채상환을 끝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처음 세워뒀던 탑승률이 그대로 지켜질 때의 얘기다. 게다가 2단계 사업비로 5조원이 더 들어간다. 또 '거꾸로 좌석'을 개조한다면 1284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탑승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지지 않으면 고속철은 부실덩어리로 전락할 위험도 있는 상황이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양근율 선임연구부장은 "주중 수요 창출을 위해 다양한 할인제를 마련 중이며, 어느 정도까지 깎아야 승객을 유인하면서 경영상 문제도 없는지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대전=최준호,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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