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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체험>여행가 한비야씨 세계奧地 체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3년 넘게 혼자서 세계 오지여행을 하고 있는 내게는 두가지 큰 원칙이 있다.하나는 땅이 붙어있는한 육로로 다닐 것,다른 하나는 가는 나라마다 적어도 1주일 이상 그 나라의 깡촌에 가서 현지인들과 똑같이 살아볼 것.
직장까지 그만두고 그동안 모아둔 돈을 몽땅 털어서 나선 이 여행길에 그동안 다닌 나라 수는 60여개국.5대양 6대주중 오세아니아 대륙을 제외하고는 다 쏘다니면서 정말 신기하고도 색다른,그러면서도 농도짙은 문화체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니는 곳이 관광지가 아닌 오지마을이라 숙소나 식당이 없으니 자연스레 민박하면서 현지인들과 섞여 먹고 자고 같이 일도 하면서 말이다. 낯설고 이질적인 문화체험의 수험료는 때로는 혹독했다.현지인들과 살면서 정말 그들의 살냄새.땀냄새.인간냄새를 맡아보려면 외지 사람에게 어느정도 경계심을 갖고 있는 그들의 마음의 빗장을 푸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마사이족 마을에서는 그들의 주식인 소피 섞은 우유도 마시고 인도에서는 쇠똥을 긁어모으던 손을 잘씻지도 않고 밀가루반죽을 해서 만든 짜파티도 받아 먹었다.에티오피아의 민박집에서는 축사와 같이 있는 방에서 자다가 온몸에 진드기들이 달라붙는 경험도 했고 중동지방에서는 사막의 더위를 무릅쓰고 검은 천으로 온몸을 꽁꽁 감고 다녀야 했다.
꼭 그렇게 하지 않고 현지인들을 그냥 구경만 하고 올 수도 있었으나 그런 여행을 하고싶지 않았다.
문화권마다 30대 후반의 미혼인 나를 보는 눈이 제각각인 것도 흥미로웠다.인도에서 만난 어느 아주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으며 『너의 부모님이 네 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해 널 이렇게 처녀로 늙게하는구나』라고 안쓰러워하기도 하고 일부다 처제가 허용되는 아프리카나 이슬람문화권에서는 소 다섯마리나 양 30마리를줄테니 자기랑 살자는 프로포즈도 받았다.
또 여행중에 만난 유럽인 여행객들은 내게 거리낌없이 레즈비언이냐고 묻기도 했다.결국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대로 판단하는 것이다.때로는 자기가 아는 것을 절체절명의 진리로 여겨 다른 문화와 만나는 과정에서 많은 ■수 도 하게 된다. 나는 세계여행을 하면서 될수 있으면 한나라의 문화나 풍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내가 사회계몽가나 여성해방운동가로 세계오지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고스란히 몸소 체험해보고 싶은 「여행자」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고 노력했다. 우리의 잣대로 보면 세상에는 틀리고 옳지 않고 부당한 일이 너무나 많았다.
탄자니아에서는 시집갈 때 미혼모가 처녀보다 오히려 인기가 있다.볼리비아 고원지대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우리에게는 절대금지된 코카인 잎을 씹으면서 다닌다.
여행 사이사이에 우리는 현재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의 문화에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하면서 과거의 찬란한 역사나 전통과는 상관없이 지금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비판적이지않나 돌아보게 된다.
걸어서 다니는 오지여행.며칠 묵어 정든 민박집을 떠날 때면 언제나 『세상사람들 사는 모습이 참 다르구나.그런데 사람들은 다 똑같구나』라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결국 다르게 보이던종교와 인종,전통이나 관습에서 비롯되는 문화라는 것은 겉껍데기,옷에 불과하고 그 옷을 벗은 따뜻한 온기의 벌거벗은 모습은 모두가 다를바 없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요즘 여행에서 잠시 한국에 돌아와 신문이나 TV를 보면 세계뉴스가 제일 재미있고 관심이 간다.내가 가본 나라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 나라가 지리적으로 아무리 먼나라라도 아주 가깝게 느껴질 뿐더러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마치 내 일처럼 안타까울 때가 많다.
여행이 길어질수록,지구의 깡촌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전세계가 내집이요,만나는 사람들이 내 식구같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세계의 다양한 문화체험이 한 사람을 진정한 코스모폴리턴으로 만드는중요한 과정이란 것을 알게 된다.
〈여행가.『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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