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新증권정책 "당근"이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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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12일 발표된 「증권발행.유통제도개선안」은 획기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기본철학이 바뀌지 않았다.물량조절에서 손떼는 대신 공개요건을 강화한 것은 과거 「자격심사주의」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 준다.투자자가 무지하니 정부가 판단해 줄 수밖에 없다는 발상이다.
자격을 갖추고도 정부의 물량조절에 묶여 여태 기다렸는데 물량조절이 없어진 지금 강화된 기준에 미달돼 공개를 못한다면 제도개선안이 추구하는 자율정신에 어긋나는 게 아닐까.공개후 주식이거래될 장소로 거래소 1,2부,코스닥등 「자격」 에 따라 시장만 지정해 주면 될 것이다.미룰 문제가 아니다.증권사들이 믿을만하냐는 의구심이 있지만 경쟁력향상이 더 급하다.다만 유가증권신고서를 허위기재한 발행사.공인회계사.증권사등에 지우는 손해배상책임(거래법 제14조)에 더해 벌 금.영업정지등 강력한 징계를 강구해 볼 만하다.개선안의 두번째 결함은 「수요」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지난 수년간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한 이유중 하나는 금융실명제 실시,주가조작에 대한 감시강화등으로 인한 투기수요의 위축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다.주식을 사면 「장기적으로」금리보다 나은 수익률을 얻을 수있다는 확신을 주는데 도움이 될 조치들이 필요하다.불공정거래의차단,소액주주권 보호는 물론이고 투자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전제로 하 는 만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또 기업이 배당을 늘리도록 유도하고 기관투자가부터 배당투자의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이런 의미에서 투신의 단기매매는 감시해야 마땅하다.연.기금이 주식투자를 늘리고 기업연금제도를 실시할 때가됐다. 장기투자에 대한 소득공제등 세제상 우대조치들은 다소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검토해 볼만 하다.액면분할은 상법개정이라는번거로움이 있지만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끝으로 매매수수료의 자율화도 더 미룰 수 없다.불보듯 뻔한 인하경쟁이 가뜩이나 어려운 증권사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지만 구조조정은 어차피 불황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수수료자율화는 결국 「제살 깎아먹기」식의 증권영업을 혁 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정부는 내친 김에 증권사의 영업을 제한하는 각종법규를 개폐(改廢)하고 회계제도 개선.공시강화.감독체계 정비등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바란다.
권성철 본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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