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검찰도 코드 맞추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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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문 사건사회부 기자

대검찰청은 25일 '인권보호 강화 종합대책'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검찰은 "수사 중간발표나 소환사실 공개는 강력히 금지하고, 오보 등 취재기준을 위반한 기자는 출입제한 조치를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보도자료는 '기자에 대한 출입제한 등 제재방안'이라는 부분에 굵은 고딕체까지 써가며 마치 언론이 인권침해의 주된 원인인 것처럼 표현했다.

현재 오보와 관련해서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와 정정보도 요청 등 피해자를 구제할 장치가 마련돼 있다. 또한 기자단 차원에서 검찰 등 수사기관이 보안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요청한 엠바고(보도제한)를 깬 언론사에 대해 자체적인 징계를 내리는 등 내부통제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오보 여부를 마음대로 재단하고, 언론의 출입 자체를 제한하겠다는 발상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게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26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관계자는 "대검 지침 때문에 브리핑을 못하게 돼 앞으로 선문답으로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사업 의혹과 관련, "피의사실 공표 등으로 감찰조사를 받게 된다"면서 몸을 사렸다.

이에 일각에서 "오일게이트와 관련해 실세 정치인이 거명되는 것과 수사 비공개 방침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오후 들어 특수부 측은 오일게이트의 핵심인물인 전대월씨의 출두사실과 처리방안 등을 공개하는 등 입장을 완화했다. 김종빈 검찰총장이 대검 기자단과 만난 직후였다. 김 총장은 "(오일게이트)사건처럼 엄청난 의혹이 제기된 경우 적극적으로 언론에 공개해야 한다"면서 "언론과 여론의 신뢰를 바탕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 고위 간부도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 간부는 "지난해 일선에 내려보낸 지침과 (이번 발표가)다른 게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발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알맹이 없이 만들어졌다. 결국 이번 대책은 인권보호보다는 청와대의 코드에 맞추기 위해 언론을 겨냥해 만든 것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김종문 사건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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