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의 추석 귀향일기] 호남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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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점 만점에 평균 2.8점.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지역구에 내려간 여섯 명의 여야 의원(한 명은 원외)이 전하는 지역의 체감경기지수다. 한마디로 죽을 지경이란 얘기다. 귀향 활동 중 여당 의원들은 “경제를 살리라고 대통령 뽑아 줬더니 이게 뭐냐”는 호통 때문에, 야당 의원들은 “야당도 잘한 것 없다”는 질책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성난 민심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정치권의 고민이 깊어 가고 있다.

장사 좀 되느냐고 물었더니 놀 수 없어 그냥 한다더라
우윤근 민주당 의원


“내가 나라님한테 찾아가 따져야 것소.”

13일 광양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시골 할머니가 불쑥 던진 말이다. 할머니는 광양시에서 주는 기초노령연금 8만원으로 근근이 사는데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 밖에 나오기가 무섭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따지겠다고 하니 야당 의원인 내가 머쓱하다. 분식집에 들어가 튀김을 주문하고 아주머니에게 “장사 좀 되느냐”고 물었더니 “놀 수 없어 그냥 하고 있다”며 한숨부터 내쉰다. 아주머니는 선거 때면 늘 민주당만 찍다가 지난 대선 때는 경제를 살린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밀어줬는데 물가도 못 잡는다고 불만이 대단했다. 동행한 시의원 한 분이 “민주당이 열심히 하고 있다”고 위로하다 “물가 못 잡는 것은 민주당도 책임 있다”는 핀잔만 들었다.

한우협회 사무실에 들르자 임원진들이 “사료 값 응원(지원) 좀 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송아지를 내다 팔려면 27개월은 키워야 하는데 매월 들어가는 사료값만 12만원꼴이라고 한다. 현재 600kg 수소가 340만원 수준이니 사료값 뽑기도 어렵다. 14일엔 광양제철소 직원들이 이용하는 대식당을 찾았다. 뜻밖에 가족 단위로 식당을 찾은 사람이 많았다. 이곳 식당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외식비를 아끼기 위해 모인 가족들이라고 한다. 사정은 알았지만 가슴은 더 답답해졌다.

복지시설 후원 물품도 뚝
여유 없어 마음까지 옹색
장세환 민주당 의원


이번 귀향길에서 격려하고 걱정해 주는 주민들도 만났지만 대개는 호된 꾸지람만 들었다. 제대로 정치를 하라는 주문이었다. 가장 큰 불만은 역시 경제였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다른 건 몰라도 경제는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는데 물가는 뛰고, 취직도 안 되고 월급까지 깎였는데 대통령과 정부는 헛발질만 하고 있다”며 원망의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13일 들른 전주 효자동 서부시장의 상인들은 “지난 설 매상의 3분의 1도 안 된다”고 울상이었다. 한 과일 가게 주인은 “서민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아직도 대운하나 파려고 하고 종부세나 폐지한다니 누가 정부를 믿고 따르겠소”라고 언성을 높였다. 복지시설도 사정이 어려웠다. 명절 때면 답지하던 후원 물품과 기부금이 뚝 끊겼다고 한다. 다들 여유가 없으니 마음까지 옹색해질 수밖에. 지역 현안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특히 토공과 주공의 통합 추진으로 혁신도시 건설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정부가 수도권 위주의 성장개발정책을 펼쳐 지방이 찬밥 신세가 되고 있다는 위기 의식도 대단했다. 많은 주민은 “왜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나. 야당이 똑바로 해야 대통령 귀가 뚫린다”고 당부했다. 선거 때 “국민을 하늘같이 섬기겠다”고 했던 약속이 새삼 부끄러워진 추석 연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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