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죽어서 집얻은 6.25참전 홈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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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 뉴욕시 맨해튼의 집없는 부랑인,이른바 「홈리스」(homeless)였던 한 흑인이 지난 12일 롱아일랜드의 캘버튼 국립묘지에 국가유공자로 안장됐다는 소식이 최근 미국 주요 신문들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레드는 이제 더 이상 홈리스가 아니다.』 「레드」는 지난달10일 맨해튼 시내 한 복판에서 다른 홈리스들과 셔츠 한장을 놓고 싸우다 흉기에 찔려 살해된 흑인 해리 래번 자먼(60)의별명이다.
레드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고 장례 음악도 테이프녹음으로 대신했으며 예포도 조사도 물론 없었다.
그러나 장례식 후 덩그라니 혼자 남은 그의 묘비엔 위와 같은묘비명이 새겨졌다.
레드는 지난 51년부터 53년까지 한국전에서 북한군과 싸운 참전 용사였다.
앨라배마 출신인 그는 한국전이 끝나고 귀국한 뒤 직업이 없이부랑아로 떠돌다 맨해튼으로 진출,센트럴 파크 등지에서 푼돈을 얻어 살아왔다.
그의 지문 검사 결과 한국전 참전 용사임이 밝혀지자 뉴욕시 당국은 법에 따라 그를 국가유공자 자격으로 국립묘지에 안장한 것이다. 40여년을 부랑아로 떠돌던 레드는 죽어서야 비로소 머무를 곳을 찾았고 명예도 얻은 셈이다.
그러나 살아서 받던 사회적 냉대와 달리 죽어서 받은 예우에 레드는 과연 유감이 없었을까.
미국은 걸핏하면 영웅을 만들어내는 사회라는 비아냥도 없지 않지만 레드의 경우는 그 정반대의 경우다.
어느 국가나 사회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사람들을 생전에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서도 다음 세대에 대해 국가를 위해 몸바칠 것을 다시금 요구할 수 있을까.
미국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레드의 장례식은 우리에게도 적지않은교훈을 주고 있다.
진창욱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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