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유림의 성지, ‘퇴계종택’ 들여다보기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1 퇴계종택 전경. ‘ㅁ자’형 본채와 별채인 추월한수정, 그 뒤쪽의 사당 등 세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원래는 퇴계 사후 손녀 두 명이 이 집터에 자리 잡았다. 당시 풍습에 따라 남녀 차별 없이 서열 순으로 재산이 분배됐기 때문이다. 1715년 도산서원 원장으로 있던 권두경이 “퇴계 종가가 살아야 할 자리”라며 각 문중을 불러 회의를 한 끝에 재산 ‘빅딜’이 이뤄져 종택을 짓게 됐다. 1896년과 1907년 일본군에 의해 불탔으나 1929년 13대 종손 이충호가 문중과 유림의 지원으로 다시 지었다.

2 사당. 조상의 신주를 모신 곳으로 종가의 상징이다. 퇴계와 부인 두 명의 신주, 현 종손(동은씨)의 4대 선조 신주가 모셔져 있다. 통상적으로 4대조까지만 제사를 모시지만 나라에 큰 공을 세우거나 가문을 빛낸 이들의 경우 신주를 물리지 않고 계속 제사를 지낸다. 신주 를 옮기지 않는다는 뜻에서 ‘불천위(不遷位)’라고 한다.

3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 1715년 종택을 지을 당시 권두경의 주도로 영남 유림에서 정자 겸 별채로 세운 것이다.
현판들은 권두경이 명명한 것으로 퇴계의 학덕을 기리는 내용이다. ‘추월한수’는 퇴계의 맑은 성품을 가리키며, ‘도학연원방(道學淵源坊)’은 도학의 근원이 된 곳이란 뜻이다. 1929년 종택을 다시 지을 때도 전국의 450여 문중에서 성금을 내 복원했다. 이때 현판도 다시 써 걸었다.

4 도산서원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찾아와 가훈을 청하자 16대 종손 근필씨가 ‘예인조복(譽人造福·남을 칭찬해 복을 짓는다는 뜻)’을 써 주는 모습. 종손이 여전히 지역의 ‘큰 어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