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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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유치한 푸닥거리 구경 말고 갑시다!』 딴은 그랬다.
「여대생」이라는 여자들이 하늘거리는 시폰 치마 저고리 차림으로 떼지어 나와 미군장교와 껴안고 돌아가는 것도 볼썽 사나웠지만 그것을 넋 빠지게 쳐다보고 서 있는 꼴도 민망했다.
김사장이 이끄는대로 밖으로 나오자 지프가 세워져 있었다.
『타십시오.누님댁에 가는 길입니다.모셔다 드리죠.』 「누님」이란 을희가 세들어 있는 집의 안주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해요.먼저 가세요.』 『참,그렇군요.고아원에 들러가지요.』 을희의 망설임을 그는 시원스레 덮었다.을희에 관한 것을 그는 뭐든지 잘 알고 있었다.
집에 닿자 김사장은 차안에 잔뜩 실어 온 레이션상자를 내려 「누님」이라는 안주인에게 넘겨주고 두 상자는 따로 을희 방에 들여다놓았다.
『한 상자는 여러 가지 깡통이고 또 한 상자엔 분유가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먹이라는 것이다.
을희의 젖 양(量)은 넉넉지 못했다.낮에 직장에서 일할 때는젖가슴이 팽팽하게 부풀어 아프기까지 한데 밤엔 젖줄이 도무지 서지 않았다.젖이 모자라 성화 부리며 우는 맥을 위해 한밤에 미음을 쑤어 먹이곤 했다.
『멀건 미음에다 이 분유를 타서 먹이십시오.』 「생활」에 관한 것엔 도사 같은 남자였다.
레이션 상자 선물을 푸짐하게 받은 안주인이 저녁상을 차려 왔다.홍합 미역국에 불고기에 깡통 맥주까지….성찬이었다.
『누구 생일입니까?』 김사장이 물었다.
『생일이 따로 있어? 레이션 상자 들어오는 날이 생일이지.』안주인이 함박웃음이 핀채 대답했다.그녀는 김사장이 갖다 주는 레이션들을 도떼기시장에 내다 팔아 짭짤한 수입을 챙기는 것 같았다. 『자,색시도 어서 들어요.실은 이 동생한테 청을 넣어 색시 취직….』 생색내는듯한 안주인의 말을 김사장이 큰소리로 가로막았다.
『누님! 하시지 말라지 않았어요.자,맥주나 듭시다.』 -이 남자가 취직시켜 주었단 말인가.
새삼 그를 쳐다봤다.거무접접한 얼굴이지만 천하진 않았다.치열하게 타는 생활력이 다부진 표정을 덧보태고 있었다.
『우유 타서 먹여야지.』 안주인이 아랫목에 누워 있는 갓난아이 맥을 안고 나갔다.
김사장은 맥주를 거푸 마셨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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