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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계획 5029’ 작계로 격상하면 중국만 자극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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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35면

김정일 위원장의 9·9절 행사 불참을 계기로 촉발된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 위원장이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며 권력 공백은 없다”는 국가정보원 발표가 크게 주효한 것 같다. 게다가 북한 군부의 특이 동향이나 북한 사회의 소요도 감지되고 있지 않다. 예단하기에는 이르지만 당장 특단의 조치를 취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서 느낀 세 가지 문제점을 토로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에 따른 신중한 대응의 필요성을 들고 싶다. 일부 여권 인사들은 김정일 와병설을 아예 ‘유고’로 보고 이러한 유고를 북한 붕괴 또는 급변사태와 동일시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리고 일부 정부 당국자는 “급변사태 발생 시 바로 통일 국면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급변사태 대비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아주 흥미 있는 발상이고 발빠른 행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 분석, 그리고 대응은 크게 문제시된다. 우선 김 위원장의 와병이 유고 사태가 될 수 없다. 설령 그러한 사태가 발생한다 해도 바로 권력 공백, 심각한 내분, 그리고 북의 붕괴와 같은 급변사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북은 이미 1999년부터 선군정치의 기치하에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유고가 발생한다 해도 단기적으로는 국방위를 축으로 일관된 정책운용과 북한 사회의 안정적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급변사태를 통일 국면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부의 입장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북은 ‘급변사태의 통일 국면 전환’을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적대시 정책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 북의 급변사태 시 시급한 것은 통일 국면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조속한 안정화와 그 대안의 모색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개념계획 5029의 작전계획 격상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개념계획 5029는 김정일 위원장 유고 등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가 상실돼 제3국 유출 가능성이 고조됐을 때 이에 대한 한·미 간 공동 군사행동을 개념화해 놓은 것이다. 도널드 럼스펠트 전 미 국방장관은 2004년 하반기 이후 이 개념계획을 구체적 실행 가능한 작전계획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당시 참여정부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참여정부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전환에 반대했던 것으로 안다. 첫째는 과거 충무계획과 같은 북한의 급변사태 대비책이 마련돼 있는데 별도로 한·미 간에 군사작전 계획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 개념계획 5029는 북한 내 일부 세력에 의한 대량살상무기 제3국 유출 가능성 탐지 시 이에 대한 한·미 특수전력의 군사적 선제공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경우 한반도에서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불가피할 것인 바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6자회담이 운용 중인데 한·미 양국만이 독자적으로 대량살상무기 유출과 관련해 대북 군사 응징을 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급변사태 시 북을 안정화하는 데 중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중국 개입을 견제하는 인상을 주는 작계 5029는 중국과 대립각을 세워 북의 안정화와 대량살상무기 통제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이렇게 볼 때 5029의 작전 계획화는 재고할 여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정보체계 운용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이 좋은 평가를 받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칭찬을 받기 위해 노출이 지나치면 그 역효과도 클 수밖에 없다. 노출되는 만큼 다음 첩보 수집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미 행정부와 정보 당국의 태도와 처신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첩보를 단정적 정보로 오도해서도 안 된다. 만일 이번 정보 보고가 오판으로 판명된다면 어떻게 뒷감당을 할 것인가. 그리고 국회 정보위 위원들의 행태도 이해하기 어렵다. 비공개회의 내용을 어찌 언론에 곧바로 브리핑할 수 있는가. 다같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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