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여행>바홀로지-재즈의 자유정신과 바흐의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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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바흐는 순수음악이든,대중 태어난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다.지금 태어났더라면 둘 중 한 사람의 공민권은 박탈당했을지도 모르니까.왜냐고? 다른 한 사람의 음악이 볼세비키(다수파)로 받아들여졌을 테니까.』 이말은 당시 예외없이 다수파와 소수파로 나뉘어 싸우던 세태를 풍자한 것이기도 하지만 불세출의 두 작곡가에게 잠재하던 혁명성을 얼마쯤 은유한 말이기도 하다.그중에서도바흐는 순수음악이든,대중음악이든 거의 모든 음악인들에게 「성문법적 인」 가치를 지니는 이름일 것이다.그 노대가 바흐의 이름에 학문을 암시하는 「-ology」라는 접미어를 붙인 앨범이 있다.『바홀로지』다.
94년 여름 영국 맨체스터에서 밴드 리허설을 이끌던 프로듀서타드 테일러는 휴식시간에 일어난 제멋대로의 즉흥연주 사이에서 홀로 빛나는 어떤 멜로디를 듣는다.구석에서 아랑곳없이 마림바를두드리던 막스 비슬리란 연주자의 손끝에서 바흐 는 먹구름 속의섬광처럼 번득였다.『비록 바흐와 이들 사이엔 수백년 시간적 공간이 가로놓여 있지만 재즈의 자유정신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앨범 기획의 뒷얘기다.말하자면 이들 런던의 재즈 아티스트는 바흐의 「혁명성」을 일부나마 터득한 셈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제1번』의 전주곡을 바탕그림으로 삼은 첫곡은 어쿠스틱 기타의 도입이 아늑하다.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13번째 곡도 전주곡이라는 사실.『평균율 클라비어 제1집』에서 따온 이 선율을 가지고 스웨덴의 보컬리스트 비르나 린트는 꿈꾸는 듯한 소품을 만들어냈다.이 양끝의 평정에 견준다면 내부의 곡들은 잠시의 소란,그리고 팔레트의 그림물감처럼 자유롭게 풀어지는 재즈정신에 투철하다.그중 에드 존스의 색소폰으로 듣는 『포엠』같은 곡은 각별히 뛰어난 것이다.물론 조금은 듣기에 생경한 곡들로 이따금 눈에 띄는 것도 사실.그러나 바흐의 세계를 한번쯤 달리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이 음반은 가치있는 도전이다. 〈음반평론가〉 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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