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종교를 세속에서 풀어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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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떤 사람들이 물에 빠졌다고 하자. 그들을 구조할 때 우리는 종교에 따라 차별적·선별적으로 구조하지 않는다. 입학시험이나 취직시험에서 종교를 이유로 불리한 대우를 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 종교 때문에 불편하거나 갈등이 없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종교가 ‘서로 다름’과 ‘차이’의 경계선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왜 최근 들어 종교적 차별 얘기가 나오는가.

요즘의 종교 차별 논란은 권력과 연관된 문제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경찰 복음화 포스터에 나온 문제만 하더라도 이미 1회, 2회 대회 때 당시 경찰청장들이 모두 포스터에 나왔다. 몇 년 전 그때는 조용했다. 정부 한 부서가 감독해 만든 지도에 사찰은 모두 빠지고 교회만 들어갔다 한다. 정신 나간 짓이다. 우리 문화 역사의 대종은 불교이기 때문이다. 지도에 넣고 말고, 포스터를 만들고 말고로 한 종교가 부흥하고 쇠퇴한다면 그런 종교가 종교일 수 없다. 종교는 꼼수로 부흥하지 않는다. 종교는 바다보다 넓고 큰 산보다 높은 것이다. 인간의 얄팍한 머리를 넘어서는 것이다.

말끝마다 기독교 신앙인을 내세우는 공직자가 늘고 있다. 김대중 집권 후 갑자기 호남이 고향이라는 공직자가 늘어났듯이 말이다. 권력을 위해, 자리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동원하는 사람들이 종교라고 왜 이용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종교 갈등은 종교 자체에서 빚어지기보다 이를 이익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런 속인들을 보고 종교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와 종교는 상극일 수도, 동반자일 수도 있다. 종교가 권력이 되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권력의 힘으로 신앙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나 국교를 정해 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권리까지도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종교를 가지든 용인한다. 개인의 자유요, 권리이기 때문이다.

반면 종교도 민주적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 총무원장 승용차를 검문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명동성당처럼 조계사도 일종의 성역일 수 있다. 종교가 이 세상에서 박해받는 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종교가 법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국 종교의 자유를 지켜줄 울타리마저 허무는 꼴이 되는 것이다. 현장의 경찰들은 그렇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 검문한 것이 서운했다면 더 높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사과할 일이지 법집행에 충실했던 경찰을 징계할 일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다원주의를 바탕으로 한다면 종교의 다원성도 인정해야 한다. 강제적 선교행위는 이 다원성을 해칠 수 있다. 선교에 권력이 개입될 경우도 그렇다. 사회 갈등을 야기하는 선교는 종교 ‘자유’의 영역을 넘어 타 종교에 대한 ‘침해’가 된다. 신앙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형태를 취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와 곧 충돌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은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 종교나 네 종교나 종교는 다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가치가 상대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내 것을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 내 것이 없는 나는 유랑자에 불과하다. 내 것이 없는 빈 공간에는 획일주의·일방주의가 쉽게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자기 신앙을 지키겠다는 소신을 근본주의라고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종교의 갈등은 우리 종교가 세속과 범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교를 세상의 논리와 질서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가 권력을 이용하고, 권력이 종교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 종교는 세상 권력을 뛰어넘는 것이다.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으로 돌렸고, 부처님도 세속의 왕자를 버렸다. 그들은 이 땅에 권력을 잡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권력으로부터 박해받고, 가난 때문에 소외되고, 고통으로 번민하는 자들에게 하늘의 소식, 평화의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이다.

권력에 따라 종교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나 불교가 수천 년의 생명력을 지닌 것은 권력이나 정치가 잘 봐주어서가 아니다. 장로가 대통령이 됐다고 기독교가 번성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을 때 불꽃처럼 더 살아나는 것이다. 만일 이 정부가 불교를 박해한다면 우리의 초기 불교 역사가 말해주듯 분명히 불교는 더 융성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이제 종교를 세상의 관점에서 해방시키자. 종교는 종교답게 하늘의 일, 영혼의 일에 전념할 수 있게 세속에서 풀어주자.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