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케인 “나는 이단아, 함께 싸우자” … 부시·오바마와 차별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달 28일 후보 수락 연설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꼭 닮은 꼴”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매케인은 부시 정책의 90%를 지지했다”면서 자신을 ‘변화의 기수’로 부각시켰다.

그런 오바마에 대해 매케인도 4일 후보 수락 연설에서 ‘변화’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경험’에서 앞선다는 평을 들어온 매케인이지만 ‘변화’를 둘러싼 대결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것이다.

48분간 연설한 그는 오바마만큼 강하게 적수를 비판하지 않았다. 매케인은 “오바마와 그의 지지자들을 존경한다”면서도 ‘변화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는 메시지를 주려 했다. “나는 개혁을 위해 공화·민주 양당의 관계자들과 반복해서 협력해 왔다. 그게 나라를 통치하는 방법이다. 나에겐 그걸 입증하는 기록과 상처(scars)가 있지만 오바마에겐 없다”고 했다. 자신에겐 변화의 실적이 있으나 오바마의 슬로건인 ‘변화’는 말뿐이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부인 신디 여사(왼쪽에서 넷째)가 4일(현지시간)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는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엑셀에너지센터 무대에 올라 7명의 자녀와 함께 서 있다. 7명 중 신디가 출산한 자녀는 3명이다. 나머지 4명은 매케인 후보의 전처 소생이거나 입양아다. [세인트폴 AP=연합뉴스]

매케인이 변화의 대전제로 내세운 건 ‘조국 우선(Country First)’이다. 그는 워싱턴의 정치권을 “여러분(국민)이 아닌 자기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하면서 “나는 국민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집권하면 민주당원뿐 아니라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와 함께 국가를 위해 봉사하자고 권유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매케인 정부는 투명성과 책임성에서 새로운 기준을 세울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가 내세운 건 자신의 국가관과 ‘이단아(maverick)’의 이미지였다. 그는 “나는 전쟁포로였을 때 국가를 사랑하게 됐다”며 “미국의 고결함과 지혜, 정의, 선의에 대한 국민의 믿음 때문에 이 나라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진주만 폭격 소식을 듣고 전장으로 떠난 아버지가 4년 넘게 귀가하지 못한 일, 2차 대전 직후 귀향한 조부가 몸이 상해 사망한 사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자신이 포로로 잡히게 된 상황 등을 전하면서 가문의 애국심을 부각했다. 한때 성조기 핀을 가슴에 달지 않아 애국심 논란에 휩싸였던 오바마를 겨냥한 것이다.

매케인은 “나는 이단아로 불렸다”며 “이단아란 말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건 내가 누굴(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걸 나는 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을 편 것은 자신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다르다는 걸 홍보하고, ‘매케인 집권=부시 3기’라는 민주당의 논리를 격파하기 위한 것이다.

매케인은 그러면서 오바마를 좌파로 매김하려 했다. 그는 “오바마는 세금을 더 걷고, 정부 지출을 늘리며, 시장을 닫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청중석에선 일제히 “우” 하는 야유가 나왔다. 매케인은 연설 말미에 “나와 함께 싸우자(Fight with me)”고 외쳤고, 당원들은 “USA”를 연호하며 열광했다.


CNN 방송은 “매케인의 강점인 전쟁 영웅 경력을 비교적 잘 부각한 연설”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내용이 그동안 해온 유세 연설과 비슷한 데다 말투도 단조로워 오바마나 페일린의 연설보다 반응이 약했다”고 지적했다. 정치평론가 데이비드 거겐도 “연설에서 정책 제시가 부족해 차별화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세인트폴=이상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