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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들의 모임'사발통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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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사발통문」이라는 게 있다.주모자를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관계자의 이름을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삥돌려 적은 통문(通文)을말한다.당국이나 상전에게 불만이 있을 때 바로잡아줄 것을 요청하거나 집단행동을 위한 방편의 연명부로 볼 수 있다.이 사발통문을 닮은 「사발통화(通話)」가 최근 작품활동을 활발히 펼치고있는 젊은 소설가 50여명에게 돌아 화제다.
[편집자註] 김영현.임철우.이창동.최인석.고원정.최수철.구효서.이순원.박상우.김남일.김하기.방현석.이남희.임영태.윤동수.
김형경.신경숙.윤대녕.함정임.이인화.권현숙.김은숙.은희경.김호창.배수아.송경아 등.이른바 문학과지성파.문예중앙파.상상파.문학동네파,그리고 민족문학작가회의파 등으로 나뉘어 끼리끼리 활동하고 있는 80,90년대 젊은 작가들이 각기 그 동아리 대표 작가들로부터 통화를 받은 것이다.
「6월10일 오후3시 구파발 전철역에서 모이자.같은 업에 몸담고 있는 소설쟁이들로서 술자리에서 얼굴이나 익히자」는 게 사발통화의 요지다.다들 흔쾌히 전화에는 응했으나 비가 주룩주룩 온 탓인지 30명 남짓 모였다.북한산 자락 주점으 로 자리를 옮긴 젊은 작가들은 시대의,문학의 답답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접어들면서 뿔뿔이 흩어져 구심점이 없는 문단,그리고어느 파,누가 주최한다면 비토그룹이 생길까봐 전전긍긍하는 파벌의 장벽을 걷고 실로 「해방후 처음」으로 같은 작가로서의 양심을 나누는 자리였다.술잔이 돌아갈수록 그들은 서 로 파벌로 흩어져 출판사의 상업주의에 무기력하게 말려들고 있지 않나를 반성해보았다.또 원고료 인상,문학의해 행사에의 적극적 참여 여부,선배들이 이끄는 기성문단의 파행성 여부,일부 문학상의 상업적 타락과 그로 인한 문학의 오도에 대해 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젊은 작가들은 한 시대가 마감됐는데도 전혀 새로운 전망은 열리지 않는 시대의 답답함을 서로 호소하기 시작했다.젊은 작가의 양심으로서 문학 나름의 고민거리를 찾아야 할텐데 좀체 그 문학적 고민도 찾아들지 않는다는 자책감.그 자책감을 서로 털어놓으며 문학적 양심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초월,진정 문학을 위하는 작가로서 이런 자리를 가급적 자주 갖자며 일단은 「역사적인」 첫 모임을 파했다.선배문단에 대응하는,파벌을 초월하는 소위 자발적 「청년작 가 모임」으로 발전할는지귀추가 주목된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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