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양자강1만리>47.제2부 강소.절강성-小百花劇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새벽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에 하루가 시작된다.오전6시 기상.15분동안 세면시간이 주어진다.곧바로 아침 점호가 이어지고 무공훈련이 실시된다.뒤집고 넘어지고 구르고 뛰는 기계체조를 방불케하는 격한 훈련이다.그 뿐 아니라 창.칼.극(戟)등 각종 무기를 들고 실제전투를 방불케하는 무술연마가 계속된다.이쯤되면 고대의 군사훈련에 못지않다.
칼을 쥔 손은 비록 거칠고 투박해졌지만아직 솜털이 가시지 않은 섬섬옥수다.맨바닥을 구르는 훈련원들의 긴머리가 간혹 출렁인다.훈련생은 모두 갓 10여세의 소녀들이다.이런 무공훈련은 아침.저녁 두번이다.나머지 시간은 모두 창(唱)과 표정연기 등 기본훈련을 실시한다.이같은 연습은 저녁9시가 돼야 비로소 끝난다.외출.외박도 금지다.일요일만 외출이 허락되나 그것도 아침훈련을 마친 뒤에야 가능하고 저녁까지는 들어와야 한다.
절강성(浙江省)소흥현(紹興縣)에 위치한소흥소백화극단(紹興小百花劇團)의 유명한 군대식 전통배우 훈련이다.
소흥소백화극단은 세워진지 10년도 채 안돼 기존의 대형 월극단들을 능가하는 명성을 얻고있는 신흥 월극단(越劇團).전통여성극인 월극은 역사가 90년밖에 안되는 신흥극종이지만 경극(京劇).황매희(黃梅戱)등과 함께 현재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3대극종 중 하나다.
소흥소백화극단의 비약적 발전에 대해 엽건국(葉建國)단장은 『무대 위의 몇 분은 무대 아래의 몇 년과 같다.평소 엄격한 훈련이 없었다면 지금 소백화극단의 명예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葉단장이 밝힌 극단 배우들의 훈련목표는「문무겸비(文武兼備)」.중국전통극중 무공은 창칼을 다루고 기예를 익히는 것이고문공은 소리와 가락을 배우고 표현을 익히는 것이다.이 두가지를능수능란하게 해낼 수 있어야 비로소 무대에 오를 자 격이 생긴다는 것이다.
83년 40여명의 창단 단원모집에 1만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고된 훈련을 잡생각없이 견디고 몸이 유연해야 하므로 선발은 11세에서 13세 여자아이들로 한정했다.이른바 연극배우의 영재교육인 셈이다.여성극 전문이고 창이 필수적이라 목 소리.용모가중요한 선발기준이 됐다.3년반의 모진 훈련을 마친 배우들로 창단공연과 함께 정식개원한 것이 86년.현재는 배우 35명을 포함해 무대미술.음악.지도교사 등 5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탐 사단이 소백화극단을 찾았을 때 마침 이들은 대북(臺北)공연을 앞두고 마무리 연습이 한창이었다.배우들은 입단 때부터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한다.생활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20여명이 한자리에 정좌해 먹는 식당에는 중국에서도 60,70년 대에 쓰이던 널빤지 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식사를 한다.밥 한공기,소채 하나,국 하나가 전부다.생활비는 한달 인민폐 90원(한화 약9천원).극단에서 인민폐 50원을 보조하고 나머지는 본인 부담이다.
이런 고된 훈련중에도 휴식시간이면 여느10대 소녀나 마찬가지로 깔깔대며 인기 가수와 영화배우를 비롯해 소소한 관심사들을떠들어댄다.고된 훈련과 엄한 기합을 이겨내는 힘이 그들의 미소에담겨있었다.
본래 월극은 소흥 승현에서 유행하던 각설이타령이 연극 형식으로 바뀐 것으로 처음에는 주로 민간가락을 사용한다 하여 이를 「소가반(小歌班)」이라 불렀다.또 반주가 간단해 자막대기.북만으로 「띠뚜띠뚜」소리를 낸다고 해「띠뚜반(的篤班) 」이라고도 불렸다.연극으로 공연되자 마자 1년만에 고을 안에 13개의 소가반이 생겼다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당시 민간에는 「소가반 공연을 보면 남자는 밭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여자는 밥지을 시간을 놓치며 여자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잊게된다」는 민가가 생겨날 정도였다고 한다.20년대에는 상해(上海)등 대도시로 퍼져나갔고 관현악으로 반주하면서 가락도 보다 세련돼 졌다.이 과정에서 원래 남자들로만 구성됐던 월극이 남녀혼성으로,다시 5.4운동,여성해방 운동을 거치면서 지난 23년 여성월극단의 탄생과 함께 여성전용극 시대를 열게된다.여성극이면서도 무술극을 공연한데다 용모가 빼어난 여배우들을 내세운 것이 관중을 끌어들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우리나라에서도 여성극 극단이 만들어져 여성극 을 크게 유행시킨 적이 있다.중국 여성극의 유행과 연관시켜 생각해 봄직하다.
▒ 다음회는「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노신 의 고향,소흥」편입니다.
글 이정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