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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미국 대선] “허리케인 온다” 공화 전당대회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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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우리는 지금 공화당의 모자(Republican hats)를 벗고, 미국인의 모자(American hats)를 써야 할 때다. 그리고 ‘미국이여, 우린 네 곁에 있다’고 말할 때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전당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네소타주 쌍둥이 도시인 세인트폴과 미니애폴리스에 모인 당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다. 강력한 허리케인 구스타프로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는 미시시피주 잭슨의 비상통제센터를 방문한 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위성을 통해 당원들에게 초당적인 애국심을 발휘하라고 강조한 것이다.

매케인이 이런 뜻을 밝히자 전당대회(1∼4일)를 준비 중인 공화당은 즉각 일정을 수정했다. 매케인의 선거참모 릭 데이비스는 세인트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초 7시간 동안 진행할 계획인 첫날 일정을 2시간30분 정도로 축소 조정했다. 데이비스는 “첫날은 정치성 짙은 프로그램을 없애고 실무적 안건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화당은 1일 오후 3시 대회 개막 선언을 한 뒤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CVID)’ 등을 강조하는 정강정책 채택 등 꼭 필요한 안건만 처리하고 막을 내릴 방침이다. <본지 9월 1일자 1면>

이날로 예정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의 연설도 취소됐으며, 다른 사람들의 연설 일정도 대부분 없어졌다.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는 그대로 연설하지만 주제는 ‘매케인 찬양’이나 ‘공화당 단결’에서 ‘재난 구제, 이재민 돕기’로 바뀔 것으로 알려졌다. 3일 연설할 예정인 매케인 부인 신디도 잠깐 나와 역시 허리케인 얘기를 할 것이라고 공화당 관계자는 밝혔다.

공화당은 2∼4일의 스케줄도 구스타프로 인한 피해 상황을 봐 가며 하루 단위로 조정할 방침이다. 전당대회의 주인공인 매케인이 대회장에 나타나지 않는 초유의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매케인은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정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과 시나리오가 열려 있다”며 “후보 수락 연설을 (허리케인 피해가 예상되는) 걸프만 지역에서 위성으로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피해 상황이 심각할 경우 전당대회장이 아닌 재난 현장을 찾아 복구 노력을 하면서 연설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전당대회장 주변에선 구스타프를 원망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원봉사자 애슐리 서먼은 “민주당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고, 언론이 그걸 집중 보도하는 바람에 상승 효과(bounce effect)를 누렸다. 그러나 우린 구스타프 때문에 국민의 관심을 끌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스타프가 매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로이터·AFP통신 등은 “매케인의 대응은 신속해 보인다”며 “그가 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인식을 심어 줄 경우 그의 지지율은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공화당이 축제 이벤트를 대폭 줄이는 건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관계자들은 지난달 31일 공개된 CNN방송의 여론조사 결과에 고무된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난 지난달 28일부터 나흘간의 조사에서 매케인이 48%의 지지율을 얻어 오바마(49%)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매케인이 부통령 후보로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지명한 것이 대중 사이에서 긍정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오바마의 상승세에 제동을 걸었다”는 게 공화당 측의 분석이다.

세인트폴·미니애폴리스=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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