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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체제 출범 10년] 국내외 차기 관측 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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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김정일(左) 국방위원장이 1989년 11월 중국을 방문하는 김일성(右) 당시 주석의 특별열차에 올라 환송하고 있다. 80년대 후반 이후 金주석은 외교, 金위원장은 내정을 주로 담당했다.

김정일(62)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는 아들인가, 제3의 인물인가?

최근 북한 내부에서 극비리에 金위원장의 후계자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특히 올해는 金위원장이 후계자로 추대된 지 30주년, 김정일체제 공식 출범 10주년을 맞는 해여서 김정일 후계구도에 국내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북한의 후계구도를 놓고 소장학자 간에 논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고, 미국과 일본의 외신들은 각종 소문을 검증 없이 보도하고 있다.

◇'3대 세습한다'=국내외 언론과 일부 북한전문가들은 金위원장과 고영희(51)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철(23)과 김정운(21) 둘 중의 한명이 후계자로 유력하거나 사실상 이미 내정됐다고 추론하고 있다.

2002년 8월 조선인민군출판사가 대외비로 발간한 '존경하는 어머님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 끝없이 충직한 충신 중의 충신이시다'라는 문건과 金위원장의 요리사로 북한에서 13년 동안 체재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가 지난해 6월 출간한 '김정일의 요리인'의 내용이 주요 근거로 인용된다. 비밀문건에 나오는 '어머님'은 고영희를 지칭하며, 그에 대한 우상화는 김정철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한 정지작업의 일환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두 아들을 직접 목격했던 후지모토는 "金위원장이 엄마를 많이 닮은 김정철보다 자신을 빼닮은 김정운을 더 좋아했다"고 밝혔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연구위원은 "북한에서 金위원장의 현재 부인인 고영희에 대한 개인숭배 작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金위원장과 고영희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철 또는 김정운을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는 조치"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2년께부터 중국 베이징(北京)의 북한과 가까운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 "김정철이 후계자로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9월 국방위원회 위원에 전격적으로 기용된 백세봉이 김정철의 가명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 국무부도 金위원장의 뒤를 이어 북한을 통치할 후계자는 그의 두 아들 중 한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촉각을 세우고 있다.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는 김정철은 金위원장의 둘째아들로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를 나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제3의 인물이다'=최근 북한이 당면한 국가적 난제의 해결을 위해 경제관료나 군부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정일체제 정통성의 기초가 김일성 주석이 가졌던 카리스마에 의존한 것이었다면 국제정세와 북한 내부 경제사정으로 사회.경제적 실적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 정통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통일연구원 이교덕 선임연구원은 "경제발전이라는 시급한 과제를 감안하면 전문 기술관료일 가능성도 크고 체제유지를 위한 선군(先軍)정치를 고려할 때 군부 쪽 인사일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 시일 내에 후계논의가 있을 경우 金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58) 제1부부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 북한학자는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현재 북한의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유력한 후계자 후보"라고 언급했다.

특히 2002년 金위원장이 해외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과거 자신이 후계자로 임명될 때까지 겪었던 어려움을 언급하며 "내 아들들에게는 그러한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이달 초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한 관계자도 "후계자론은 수령의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하는 것"이라면서 "후계자는 혈통보다도 그럴 만한 자질과 풍모를 더 중시한다"고 말해 '제3의 인물'쪽에 무게를 실었다.

최근에는 아들로 권력이 넘어가지 않을 경우 노동당의 핵심부서인 조직지도부의 30~40대 과장급 인물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한을 움직이는 노동당 내에 권력기반이 있어야 내각과 군부의 장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후계자 논의 아직 이르다'=북한이 후계자를 논의하거나 사실상 내정했다는 정보나 징후가 아직까지 뚜렷하지 않아 정부 당국과 많은 북한전문가는 신중한 모습이다. 일본 통신사의 한 서울특파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내에서 '김정남과 김정철의 후계자 경쟁설' '김정철 내정설' '장성택과 고영희의 권력투쟁설'등 다양한 설이 서울과 베이징 소식통을 인용해 나오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정확한 근거나 확인된 사실이 없다"며 "북한의 후계자 문제는 상당히 예민한 사안이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연구원 전현준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후계구도가 '혈통'으로 이어질지, 다른 인물로 결정될지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경제난과 북핵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계논의가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002년 서울을 방문했던 북한의 한 고위 당국자도 "남쪽에서 후계자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모양인데, 아직 북에서는 후계 논의가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80년 제6차 노동당대회를 끝으로 아직까지 당대회를 열지 못하고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변수다. 북한이 70년 5차 당대회를 거친 뒤 후계자 논의가 시작됐던 것처럼 7차 당대회를 통해 노동당을 개편한 후에야 후계구도 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는 얘기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는 "후계자가 결정되면 권력이동이 급격하게 이뤄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金위원장이 쉽게 후계자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최소한 7차 당대회가 열려야 북한 노동당 내에서 후계자 문제가 거론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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