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의 세상 탐사] 한나라, ‘게으른 웰빙당’ 이미지 벗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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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9월 정기국회다. 이명박 정권이 내건 우파적 개혁의 장래가 판가름나는 시기다. 정권의 평판은 청와대·행정부·집권여당의 역량이 모아져 형성된다. 청와대와 행정부의 실력과 밑천은 노출됐다. 방황과 혼란으로 이어진 침체의 6개월이었다. 한나라당의 진면목이 드러날 차례다. 당 지도부부터 살펴보자.

박희태 당 대표는 노련하다. 정국이 꼬일수록 단순화시켜 해법을 내놓을 줄 안다. 명대변인 출신이다. ‘국정의 총체적 난국’ ‘야당의 습관성 가출’은 그가 10년 전쯤 내놓은 정치 조어(造語)다. 지난 6개월 상황에 대비해도 들어맞는다. 그러나 그는 국회의원이 아니다. 공천을 받지 못했다. 정기국회 동안 그는 의사당 밖에서 원외의 설움과 한계를 맛볼 것이다.

정기국회의 주역은 홍준표 원내대표다. 그는 “좌파 정권 10년의 좌 편향 정책을 뜯어고치는 데 정기국회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그 목표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 그의 발언은 야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 그의 의도대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주지 않을 것이다. 그의 당내 리더십은 상임위원장 후보 선정 과정에서 다시 상처를 받았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의 몫은 우파적 변혁의 법적 장치를 마련해 주는 일이다. 그는 합리와 절제를 정치의 주요 덕목으로 생각한다. 그의 스타일은 빛날 수 있다. 개혁의 완급을 세련되게 조절하는 전략적 유연성으로 작동할 수 있다. 반면 거기에 너무 집착하면 뚝심 결핍이 된다.

한나라당은 왕초보들이 득실거리는 거대 공룡이다. 의원 숫자(172)가 민주당(83)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초선이 절반을 넘는 91명이다. 초선들은 쉽게 국회에 들어갔다. 당내 경선 없이 얼떨결에 공천을 받았다. 그리고 대선 승리의 남은 바람을 타고 쉽게 당선됐다. 4년 전 열린우리당 386 초선의 대거 등장은 탄핵 돌풍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당내 경선의 고달픈 과정을 거쳤다. 한나라당 초선들처럼 정치적 비용을 적게 내고 짧은 시간 만에 의석을 차지한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유별난 행운은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미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 실망감이 쌓였다. 광우병 촛불시위에서 초선의 존재는 거의 없었다. 청와대가 촛불 세력에 포위됐을 때 그들은 눈만 멀뚱거리며 구경꾼 행세를 했다. 촛불 세력의 장기 시위로 시민들이 고통을 받을 때 초선들은 나서지 않았다. 과거 박근혜 대표 시절 천막당사의 각오와 투지가 전수되지 않았다. 광우병 괴담에 맞서 진실을 알리려는 정의감이 없었고, 정권에 대한 충성심도 약했다. ‘특혜 공천, 편한 당선’의 정치적 귀결이었다. 이명박 정권 지지자들은 대거 이탈했다.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은 소신 발언을 꺼린다고 한다. 튀지 않으려 한다. 잠복 상태지만 친이· 친박 계파 간 불협화음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변명이다. 소신 발언을 하려면 재간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 초선에게는 역부족이다. 정치 연마의 경험이 일천하고 이념적 근성이 부족해서다. 당의 이미지는 ‘새 피’로 수혈한 초선들에 의해 바꿔진다. 노무현 정권 당시 여당은 ‘선생님 없는 봉숭아 학당’이었다. 386 초선들이 설친 탓이지만 그들은 의욕과 도전 자세가 있었다. 반면 웰빙에다 게으른 돼지의 인상이 한나라당이다. 부자 당, 부패 이미지가 곁들여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좌편향 법안 철폐’의 임무가 주어졌다. 그것을 완수하려면 여론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경제 살리기와 민생보호 의지를 실천으로 과시하지 않으면 힘들다. 한나라당이 그럴 만한 역량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정기국회에서 낙제점을 면하면 다행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나라당은 심기일전할 것인가.

중앙일보 대기자 bg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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