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소방관과 책, 아름다운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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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22일 우리는 또 한번의 안타까운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나이트클럽 화재 현장에서 무너진 천장에 매몰돼 귀한 생명을 잃은 소방관 세 분의 영결식이었지요. “내 아들은 안 된다”는 노모의 통곡과 아버지의 위패를 받쳐 든 열세 살 어린 상주의 모습이 보는 이들도 아프게 했습니다. 소방관들의 생명을 건 헌신과 봉사는 이런 참담한 순간이 돼야 비로소 조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반짝’ 눈물은 금세 일상에 묻혀 버리곤 합니다.

신간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출판도시문화재단)는 소방관들의 노고에 대한 우리의 고마움을 한층 일깨우는 책입니다. 소방관 103명의 체험담을 실은 일종의 수기집이지요. 생사를 넘나들었던 재난 현장의 아찔한 순간이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슬레이트 지붕에 올라가 진화 작업을 하던 중 지붕을 뚫고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고, 화재 현장 주변에 주차돼 있던 차량들이 열기로 브레이크가 파열되면서 소방대원들 쪽으로 돌진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위급하다며 구조를 요청한 ‘환자’가 갑자기 칼을 들이대 죽음의 문턱에 섰는가 하면, 미친개를 잡으러 출동했다 개에 물리기도 했지요.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의 생명보다 다른 사람의 안위를 더 걱정한 경험은 ‘부끄러운 기억’으로 기록됩니다. “자신의 안전이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첫번째 요건”이기 때문이랍니다.

책을 펴낸 곳은 ‘출판도시문화재단(이사장 이기웅)’입니다. 파주출판도시 활성화를 위해 각종 문화 사업을 벌이는 법인이지요. 그동안 출판도시의 건축이나 역사 등을 다룬 출판도시 관련 서적을 간혹 출간하긴 했지만 일반 단행본을 내놓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뒷얘기가 궁금했습니다.

계획도시인 파주출판도시에는 소방서 부지가 있답니다. 하지만 아직 그 부지는 공터입니다. 소방서를 유치하기 위해 재단 측은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측과 자주 만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소속 소방대원들의 체험수기를 엮은 책 『119 소방대원 구하기』를 보게 됐답니다. 3월 발간돼 경기도 내 소방서와 전국 관공서·도서관에 배포됐던 비매품 책이었습니다.

그 속에 담긴 현장의 목소리에 출판인들이 먼저 빠져들었습니다. “책의 메시지 ‘안전’이야말로 출판도시가 지향하는 이념”이라면서 “이 책을 다시 잘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답니다. “엄밀히 말하면 ‘좋은 책’과 ‘안전’은 동의어”라는 재단 측 해석도 신선합니다. ‘좋은 책’과 ‘안전’ 모두 교양과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는 의미랍니다.

책의 서문과 제목 글씨는 소설가 김훈씨가 맡았습니다. 서문의 한 구절이 이렇습니다.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남아있고, 정부와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헌사를 목숨을 잃어 영웅이 된 소방관이 아닌, ‘일상’의 소방관들에게도 보내게 돼 참 다행스럽습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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