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아물지 않은 역사의 상처 ‘창씨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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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창씨개명
미즈노 나오키 지음, 정선태 옮김, 도서출판 산처럼
332쪽, 1만6000원

내 어머니 성함은 일제 말기 갑자기 하라다 사다코(原田貞子)로 바뀌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이 벌어지자 집안 어른들이 하는 수 없이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당시 떼어뒀다가 요행히 지금까지 남아있는 외가의 호적등본에는 집안 어른들의 성함이 낯선 일본식으로 적혀 있다. 이처럼 창씨개명은 분명한 사실이요, 역사의 쓰린 상처다.

태평양전쟁 때 포로감시원으로 일하다 종전 뒤 전범으로 처형 당한 조선인이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 “내 이름은 그게 아니요”라고 했던가. 그런데도 일본의 일부 정치가 등이 창씨개명은 강제가 아니었다고 우기고 있다.

일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인 지은이는 이 책을 쓴 목적을 “이러한 일본에서의 역사인식을 사실에 기초하여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창씨개명이 일본 식민지배의 죄악에 속한다는 상식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일본의 조선지배와 이름의 정치학’라는 부제에서 보듯, 지은이는 창씨개명을 모티브로 식민지배의 무단성과 부조리를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창씨개명을 동화와 황민화의 측면만이 아니라 차이화의 측면에서도 포착하려 했다든지, 적극적으로 응했다고 알려진 친일파의 고뇌까지 함께 그렸다는 데서 지은이의 품이 느껴진다.

흥미로운 것은 지은이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일본어판 독자들의 반응이다. 학교 동급생이 갑자기 일본이름으로 바꾸고 나타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분(이미 80~90대의 고령이다)이 이 책을 읽고 창씨개명이 무엇을 의도했는지를 이해하게 됐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창씨개명에 반대하다 검거됐던 분의 동생이 일본어판을 읽고 관련 자료를 보내달라는 부탁을 해오기도 했다고 한다. 창씨개명이 지나간 역사가 아니고, 아직도 한국인을 괴롭히는 현실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한일관계의 장애물이란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 창씨개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한일 양국 역사인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분야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독부 문서와 일본어 신문 같은 일본 측 1차 사료를 중심으로 이뤄진 연구 결과다. 따라서 한글로 된 조선인의 대응 자료를 발굴할 과제를 한국의 학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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