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93. BK, 마음의 문을 열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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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다시 일어선 박찬호는 봄바람처럼 신선하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투구는 분명 어둠이 아니라 빛이다. 그가 지난 2년 동안 부상과 부진의 어둠에서 헤매었기에 그 빛은 더 환하게 느껴진다. 한국프로야구에서도 닮은꼴 소식이 있다. 롯데 재도약을 이끄는 이용훈이나 한화 순항의 뒷문지기 지연규를 보면 그렇다. 둘 다 꾸준한 노력과 재기에 대한 강한 집념으로 다시 일어섰다. 일본의 이승엽도 올해는 나아졌다. 봄바람 부는 4월, 야구계 여기저기서 재기를 통한 희망의 메시지가 들려오고 있다.

재기, 부활, 재활….

스포츠가 주는 교훈 가운데 더욱 드라마틱하고, 가슴 찡한 대목이다. 재기를 통해 그들은 본보기가 되고, 박수를 받는다. 그런데 재기를 위해서는 아프지만 먼저 쓰러져야 한다. 쓰러진 사람만이 다시 일어설 욕망을 느낀다. 일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이 넘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과정을 감수해야 한다.

박찬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LA 다저스 시절, 야구를 잘하니까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나를 위해 주고, 격려해 주고, 감싸줬다. 귀찮을 정도였다. 그래서 좀 조용히 있고 싶었다. 텍사스에 처음 왔을 때, 그래서 잘됐다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프고, 야구 못하고, 외롭게 지내면서 그동안 나를 귀찮을 만큼 위해 줬던, 그 사람들이 결국 나를 지탱해 준 힘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내가 높은 곳에 있다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 나를 보호해 준 서커스단의 그물이었다."

그때 박찬호는 혼자 어둠 속으로 들어가 웅크리지 않고 먼저 나아가 주위의 도움을 구했다. 친구를 사귀고, 선배와 후배처럼 따뜻한 관계로 바꿔 나갔다. 물론 시간이 걸렸다. 제프 짐머맨, 케니 로저스, 크리스 영 등에게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 의지했다. 23일 뉴욕 양키스전 승리도 며칠 앞서 만난 노모 히데오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이승엽도 김성근이라는 훌륭한 지도자의 도움을 얻었다. 이용훈.지연규도 주위의 도움과 함께 일어섰다.

김병현이 생각난다. 그는 메이저리그 정상급 마무리투수였지만 부상으로, 팀 동료와의 소원한 관계로, 그리고 문화차이에 대한 적절치 못한 반응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있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말이 없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잠들기 좋아하는 그다. 김병현도 재기를 위해서는 서커스단의 그물을 차고 올라야 한다. 서로 이해하는 친구, 자신을 도와주는 코치, 지켜 주고 밀어 주는 선후배가 '팀'안에 있다. 김병현이 손을 내밀면, 그들은 맞잡을 것이다. 친구를 만들고, 동료에게 손을 내밀어라. 동료는 넘어진 나를 일으켜 주고, 나는 일어서서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 이게 스포츠가 가르치는 '팀워크'아닌가.

<텍사스에서>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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