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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혼란'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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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인문고의 강제적인 보충학습과 야간자율학습으로 학생들의 불평과 불만이 교육인적자원부나 각 시.도교육청의 홈페이지에 수백건씩 오르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2월 17일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은 방과후 수준별 보충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이 일선 학교에서 획일적이고 강제적으로 시행됨으로써 학부모와 학생들의 민원대상이 되고 있다. 교육부에선 그 지침으로 보충학습은 철저하게 희망자에 한하고, 학생의 수준 선택권을 보장하라고 하지만 일선 고교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모든 학생을 강제로 시키고, 수준별 강좌도 개설하지 않고 있다. 보충학습을 실시하고자 할 때는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서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고교와 교사가 무조건 동의하라고 강요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동의서를 배부한 뒤 즉석에서 바로 동의 표시를 해 제출하라는 비민주적이고 비교육적인 방법까지 동원한다.

자율학습 또한 학생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희망자에 한해 실시하고 학교는 장소 및 시설만 제공하도록 돼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고교에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강제로 시킴으로써 자율이라는 의미가 퇴색하고 교사와 학생 간 갈등과 알력이 되고 있다. 오죽했으면 '야간 강제 타율학습'이라 일컫겠는가.

그리고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는 '0교시'다. 이는 정상일과 이전에 이뤄지는 수업이나 자습을 말하는데, 보통 오전 8시 이전에 조기 등교해 강제적으로 수업이나 자습하는 것으로 수면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학생들이 극도로 피곤한 가운데 이뤄짐으로써 대부분이 자는 시간으로 '잠교시'라는 용어까지 나올 정도다.

얼마 전 경기도 고양시의 한 인문고 교사가 과도한 수업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학생은 정상적으로 등교해 정상수업을 하고, 보충학습이 필요한 학생에 한해 보충수업을 받게 하고 야간자습도 자발적인 희망자에 한해 실시하면 되는데도 대다수 고교에선 무조건 강제적으로 실시하니 학생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

가장 바르고 정도를 달려야 할 학교에서 이런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이며 비인격적인 작태가 발생한다는 것은 학교와 교원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비교적 바람직한 지침 한번 내려놓고는 마치 모든 일을 다한 양 착각하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자세다. 희망자에 한해 실시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도 이처럼 엄청난 학생의 민원이 제기돼도 어느 고교 하나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이번에 전국 시.도 교육감회의를 개최한 이유도 전국 각지에서 강제적인 보충학습과 야간자습, 0교시 실시에 대한 민원이 엄청나게 제기되니 어쩔 수 없이 한번 모여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어서 어이가 없다. 고작 내린 결론이 0교시나 오후 10시 이후 자율학습 지양이라고 한다. '지양'에 준하는 지침을 내려보냈는데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음에 비춰 완전히 '폐지'를 선언해야 함에도 '지양'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씀으로써 다시 일선 고교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교육의 수장이라는 자들이 전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엉거주춤한 대책이나 답변으로 다시 학교를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으니 도대체 힘 없는(?) 학생과 학부모는 누굴 믿어야 한단 말인가.

만약 이들이 발표한 대로 '지양'한다면 실시하는 시.도도 있고 폐지하는 시.도도 있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며 같은 지역.학교 간에도 다른 현상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악화시키지 않겠는가. 적어도 강제 보충학습과 야간자습, 0교시 문제에 관한 한 교육부가 직접 개입해 전국적으로 통일된 지침을 내리고 확인 감독하지 않는 한 어떤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일치된 현장교사들의 견해라고 본다.

우정렬 부산 혜광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