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용천역 폭발 참사] 北-中 국경 단둥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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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중국 도시 단둥(丹東)이 압록강과 맞닿은 강둑. 강 맞은편 북한 땅 신의주를 바라보는 50대 중반 린쉐(林雪.여.가명)의 마음도 용천 대형 폭발 사고 참사 이후 타들어가고 있다.

용천의 친지 화교들이 그 불벼락 속에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고, 살았다면 밤이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폐허에서 먹을 걸 제대로 챙기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용천에 누가 사느냐"는 질문에 머리를 흔들고 손사래 치면서 펄쩍 뛴다. "공연히 입 잘못 놀렸다가 큰일난다"며 한사코 말을 않겠다고 한다. 친척들과 가끔 연락할 때면 곧잘 터지던 휴대전화도 자물쇠를 채운 듯 무용지물이다. 린쉐는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릴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강둑에 여럿이다.

용천의 대형 참사는 단둥의 일부 중국인에게도 시름을 안겼다. 용천에 화교 친척을 둔 중국인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기자의 접촉을 피했다. 자기의 발언으로 북한에 사는 친척들이 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그래도 일부는 발 빠르게 사고 직후인 지난 23일 압록강을 건너 용천으로 떠났다. 의약품과 생필품 등을 싣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길이 아직 뚫리지 않은 듯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강가에선 "용천에 간 사람들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라며 한숨이 요란하다.

먼저 들어간 중국인들이 아주 간혹 휴대전화로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북한의 감시가 워낙 심해 통화도 제대로 못한다.

린쉐는 "그나마 전해 들은 말도 다른 사람에게 건넸다가 무슨 피해를 당할지 모른다"고 잔뜩 겁을 냈다. 그녀가 떠듬떠듬 전하는 말로는 이랬다. 신의주 남쪽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검문소가 설치돼 아무나 접근하지 못한다. 의약품을 전하러 먼저 떠난 중국 사람들도 북한 내 친척들에게 제대로 물건을 전할 수 없어 애태우고 있는 형편이란다.

또 다른 중국인이 "역 가까이에 사는 친척이 걱정됐다"며 "사고 직후 북한에 들어간 한 친척이 '신기하게도 집 유리만 깨지고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는 말을 오늘(24일) 겨우 전해 와 안심했다"고 거들었다. 그래도 북한 사정으로 미뤄 간단한 의료품마저 부족할 것이 뻔해 걱정을 떨칠 수 없다.

용천에 친척을 둔 많은 중국인은 24일 중으로 북한행 열차 운행이 재개된다는 소문에 '인편'을 구하느라 백방으로 뛰고 있다. '인편'들은 친척들에게 의료품과 돈.식품을 전달할 소중한 사람들이다. 린쉐도 이런저런 소문을 듣고 마음이 급해졌는지 서두르듯 자리를 떴다.

단둥=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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