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地圖>문학 18.90년대 신생 문예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한국의 문예지 발간사를 사적으로 정리한다면 87년은 그 소중한 분기점이 될 수 있는 문제적 연도로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87년 6월 항쟁은 당대의 문화와 지성사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쳐 정기간행물법의 개정으로 인해 폐간됐던 비판적인 잡지들이 이듬해 봄 일제히 복간되기 시작했으며 무수한 새로운 문예지들이 창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80년대 후반부터 90 년대 초반까지 다채로운 문예지들이 창간.폐간.복간 등의 명멸을 거듭했는 바 96년 시점에서 바라볼 때 문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은 대표적 문예지로는 『작가세계』『상상』『문학동네』등의 계간지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89년 여름 창간 호를 발간한 『작가세계』는 한 작가에 대한 종합적인 탐색과 검토를 특집으로 내세우면서 작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에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 바 있다. 올해부터 『작가세계』는 편집진을 전면적으로 교체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어 이미 중요한 작가가 상당수 특집의대상으로 다루어진 이 시점에서 기존의 포멧이 효과적인 방식으로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상상』의 경우에는 90년대에 들어와 활기차게 부각되고 있는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순발력 있게 문학과 접목시키면서 새로운문예잡지의 전형을 보여줬다.
또한 그들의 민첩한 문제제기는 한국문단에 대중문학에 연관된 첨예한 논점을 제공했다.그러나 편집진 교체과정에서의 잡음과 몇몇 비평가들의 의도적인 무리한 대중문학 논의는 그들의 진정한 의도를 퇴색하게만든 바 있다.
한편 『문학동네』는 대중문화가 판치는 이 시대에 오히려 진정한 문학의 복권을 주창하면서 짧은 기간 안에 문단의 새로운 파워 엘리트로 확고히 자리잡았다.『문학동네』는 또한 활발한 출판활동을 통해 한국 문단 지형의 새 판을 짜나가는 새로운 참호의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작업이 이전의 문학지와 어떤 변별성을 담보하고 있는가,그들의 문학주의가 궁극적으로 『상상』의 상업주의와 어떠한 차별성이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것으로 보인다.열정과 실험의식,진지한 지성,패기 만만한 전복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문예지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동덕여대교수.문학평론가) 권성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