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영화 "마네킨 피스" 실험적 영상 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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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6월1일 개봉되는 『마네킨 피스』는 몹시 낯선 영화다.
우선 원산지가 국내에 드물게 선보이는 벨기에다.여기에다 이번작품으로 데뷔한 감독 프랭크 반 파셀을 비롯한 제작진도 거의 모두 신인들로 한국엔 처음 선보이는 인물들이다.
뿐만아니라 영화자체의 형식도 컬트적 기괴함으로 가득차 있다.
스토리는 유치할 정도로 순진한 사랑얘기다.
전차운전사 잔이 늦은 밤 해리라는 청년을 태우는데 두 남녀는첫눈에 호기심을 느낀다.해리가 우연히 잔이 사는 건물에 방을 얻으면서 둘은 사랑에 빠진다.그러나 잔이 『사랑해』라고 말하자해리는 발작적인 반응을 보인다.
해리는 어린시절 가족과 드라이브를 하다 오줌을 누기 위해 철도 건널목에 내렸는데 그순간 열차가 덮쳐 가족이 몰사한 슬픈 체험을 갖고 있는 인물.해리가 차에서 내리면서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사랑해요』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은 서로에게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지낸다.계속 감정적으로 한 템포식 어긋나다 둘이 서로의 품으로 달려갔을때 잔은 숨을 거둔다.해리는 이때서야 『사랑해』라는 말을한다. 이런 순정영화는 등장인물도 로맨틱하고 배경도 그에 걸맞게 설정되는 것이 보통이다.그러나 『마네킨 피스』는 정반대다.
해리는 빡빡머리에 공포영화의 주인공같은 각진 이목구비를 갖고있고 잔도 촌부처럼 거친 모습으로 등장하며 카메라는 의도적으로이들을 미라처럼 잡아낸다.
영화의 무대도 발코니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낡은 아파트와 습기찬 식당의 지하주방,음산한 뒷골목이 주류를 이룬다.늘 짙은 청색톤이 깔린 화면은 흐린 날의 밤같은 분위기를 준다.
여기에다 이 영화에는 잔이 왜 숨을 거두는지,이웃집 아주머니가 왜 발작하는지 설명없이 돌발적으로 상황이 전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한마디로 서사적 구성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이런 점이 오히려 매력으로 보이기까지 한다.형식들의 불협화음이 삶의 우연성과 쓸쓸함,그리고 어긋나는 사랑에 대한 시적 이미지를 살려내는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미숙하지만 도발적인 실험성이 눈길을 끄는 아트필름 지망 신인감독의 작품.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지루한 느낌을 줄 듯싶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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