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경제,어떻게 되어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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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웅배(羅雄培) 부총리는 올해 경제를 두고 『물가안정과 경제성장은 문제가 없다.다만 경상수지 적자가 문제다.최대한 노력해수출을 늘림으로써 적자폭을 줄이도록 하겠다』고 말한다.이 말을곰곰이 따져보니 그를 「난세(亂世)의 꾀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羅부총리는 수출을 촉진하되 인위적으로 환율을 건드려 원화를 약화시키지는 않겠다는 포괄적 명분을 동원한다.「인위(人爲)」라는 말의 부정적 분위기가 쉽사리 강호제현(江湖諸賢)의 동감을 사는 바람에 이 동감을 장막으로 해 그의 속 의도 는 「밝음 속으로」감춰진다.
그의 의도는 수출선수금과 수출금융한도를 약간 손질하는 것을 제외하곤 재정경제원은 실제로 수출에 관해 뒷짐 지고 있겠다는 것으로 보인다.성장과 물가는 재경원 소관 사항이긴 하지만 애초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는 까닭에 당연히 뒷짐을 지고 있어야 옳은 것으로 된다.
羅부총리의 전제처럼 과연 올해 경제에 물가안정과 성장률은 문제가 없을까.
우선 물가부터 보자.올해들어 소비자 물가는 4월말 현재 이미2.9% 올랐다.공공부문을 비롯한 서비스 가격과 농산물 관련 가격의 상승이 물가불안 방아쇠를 연속 당기고 있다.여기에 금융실명제와 12.12 증권시장안정조치를 위해 방출 됐던 통화로 인한 유동성 과잉이 인플레이션을 불붙일 기름처럼 넘실 고여 기다리고 있다.이런 넘쳐나는 인플레이션 조건을 억제하고 있는 유일한 힘은 원화 강세와, 이런 원화 강세에 크게 의존하는 값싼소비재 수입의 홍수다.
지금 가장 바람직한 수출 촉진 정책은 원화를 절하하는 것이다.특히 일본과의 수출가격 경쟁에서 최근 10개월 동안 환율 하나만으로도 30% 이상 불리(不利)가 조성됐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원화 절하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원화가 절하되면 물가는 폭발적으로 오를 것이라는것을 羅부총리와 재경원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그런데 물가가 오르는 책임은 재경원 몫이다.
우리가 지금 보는 북극성의 빛이 거기서는 이미 8백년 전에 발사된 것인 것처럼 지금 있는 인플레이션 조건은 벌써 2,3년전에 완성을 본 것이다.그리고 시간은 안타깝게도 비가역적(非可逆的)이다.인위적으로 원화를 절하하는 것은 재경 원에는 송장 치우고 살인 누명 덮어 쓰는 꼴이 될 것이다.
한편 성장률은 어떤가.한은(韓銀)이 발표한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추계치에 돋보기를 대고 세부를 보면 羅부총리의 말과는 바탕이 너무 다르다.특히 경기 변화를 잘 나타내는 것은수요 지표다.총고정자본형성 연간 성장률이 94년 1.4분기와 95년 1.4분기가 각각 13.4%와 15.5%였음에 비춰 올해 1.4분기는 그 절반 수준인 7.3%로 떨어졌다.그 가운데기업의 의욕과 계산을 나타내는 설비투자는 94.95년 두해의 1.4분기에 각각 21.3%,25 .5% 성장하던 것이 이번 1.4분기는 고작 4.3%로 주저앉고 말았다.
최종수요 항목 가운데 성장률이 너무 높은 바람에 한숨이 더욱무거워지는 것이 둘 있다.하나는 재고증가가 지난해 동기의 두배에 이른 것이고,다른 하나는 불변가격으로 본 상품 수출 증가율이 24.1%나 돼 지난해 동기 성장률에 진배없 다는 것이다.
수출이 이렇게 잘 되고 있음을 왜 걱정하는가 하고 일단 묻는 것은 당연하다.돋보기를 통해 보면 그게 아니다.수출가가 떨어지니까 경상가격으로는 수출 성장이 대폭 둔화되면서 경상수지 적자폭은 급격히 커졌는데 떨어지는 가격 을 물량으로 벌충하다 보니불변가격 성장률은 높아진 것이다.약세 엔화에 억지로 경쟁하다가생긴 일이다.이런 출혈수출은 곧 한계에 다다른다.
지금 같은 때 부총리는 꾀보이기 보다 우직하게 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올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 보다 좀 낮게,즉 5%에서6% 사이로 새로 잡고 여기에 맞게 재정과 금융을 축소 조정하면 인플레이션의 힘을 다소 약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정부예산의 흑자와 한은의 민간부문 통화공급 축소부분으로 한은이 달러 매입에 나서면 환율을 다소나마 원 약(弱)쪽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이 이런 선수(先手)를 재빨리 채택하지 않았다가는 늦어도내년에는 물가.국제수지.성장률 이 세가지가 모두 황당한 지경에들어 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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