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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TOM’ 전략으로 식중독균 차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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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CP(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에선 사람에게 식중독 등 위해를 일으키는 요소로 생물학적·화학적·물리적 위해요소 3가지를 흔히 꼽는다. 이 중 전문가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생물학적 위해요소다. 전체 식중독의 96% 이상이 이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위해요소 중에서도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세균이다. 노로 바이러스 등 바이러스에 의한 식중독도 최근 자주 발생하지만 식중독의 주류는 아직 세균성 식중독이다.

살모넬라균·포도상구균·장염 비브리오균을 ‘3대 식중독균’으로 분류한다. 국내에선 이 중 살모넬라균과 포도상구균이 늘 1, 2위를 다투고 장염 비브리오균은 선두에서 조금 떨어진 3위다.

놀랍게도 미물인 식중독균은 사람과 닮은 데가 많다. HACCP의 목표인 안전하고 위생적인 식품을 만들려면 이를 역이용하자.

식중독균 즉 세균의 생존법칙으로 전문가들은 ‘FATTOM’을 꼽는다. 여기서 F는 Food(음식), A는 Acidity(산도), T는 온도(Temperature), T는 시간(Time), O는 산소(Oxygen), M은 수분(Moisture)을 뜻한다.

필리핀 바나나 농장의 세척·포장 공장 직원들이 바나나를 포장하기 전에 중량을 달고 있다.

◇F=사람은 먹어야 산다. 우리 국민은 쌀밥·채소 등 탄수화물 식품을 좋아한다.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 등 단백질 식품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졌다.

세균도 뭔가를 먹어야 산다는 것은 사람과 매한가지. 세균은 탄수화물 식품보다 단백질 식품을 훨씬 좋아한다. 식중독 사고의 원인 식품이 대부분 육류·유제품·어패류 등 단백질 식품인 것은 이래서다. 최근 미국에서 토마토·시금치 등에서 식중독균 오염 사고가 발생했지만 이는 희소한 사례다.

신구대 식품영양과 서현창 교수는 “학교 급식 HACCP에서도 쇠고기 등 ‘단백질 식품’을 고위험 식품으로 분류한다”며 “단백질 식품을 조리·보관할 때 식중독균 오염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A=건강한 사람의 혈액은 pH(수소이온농도) 7.4가량의 약알칼리성을 유지한다. ‘산성 체질·알칼리성 체질’이란 용어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 정상 pH에서 0.1만 변해도 몸에 이상이 오며 0.3이 오르내리면 의식을 잃거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세균도 중성(pH 7)에서 잘 자란다. 산성 환경을 좋아하는 호산성균과 알칼리성 환경을 선호하는 호염균이 있다.

◇T=온도는 식중독균과의 전쟁에서 가장 유효한 무기다. HACCP의 핵심을 ‘온도와 시간 관리’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아무리 열에 강한 식중독균이라 하더라도 74도에서 1분 이상 살아남지 못한다. 식품 안전 사고가 발생하면 “충분히 익히거나 끓여 먹어라”라고 되뇌는 것은 이래서다.

가끔 “열을 충분히 가해 조리했는데 식중독에 걸렸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가능한 일이다. 이 경우 원인균이 포도상구균일 가능성이 크다. 포도상구균은 65도가량으로 가열하면 죽지만 그 세균이 내는 독소는 120도에서도 잘 파괴되지 않아서다. 포도상구균은 주로 피부에 상처가 있는 사람을 통해 옮겨진다. HACCP 전문가들이 조리자의 손 등에 상처가 있으면 상처가 나을 때까지 작업에서 배제시키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식중독균 등 세균은 5∼65도에서 살아남는다. 이를 ‘위험 지대’(danger zone)라 한다. 5도 이하의 냉장 온도에선 식중독균이 죽지 않지만 증식 속도는 느려진다. 냉장고에 넣어둔 우유가 상온에 방치한 우유보다 서서히 변질되는 것은 이래서다. 이때 우유의 변질은 부패 세균이 유발한다.

중앙대 식품공학과 하상도 교수는 “냉장 온도는 물론 영하 18도 이하의 냉동 온도에서도 식중독균이 증식을 멈출지언정 죽지는 않는다”며 “일단 해동된 음식을 재냉동하는 것은 위생상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T=인간은 자손을 얻는 데 보통 20년 이상 걸린다. 그러나 식중독균은 몇 초면 증식된다. 게다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다시 넷이 되는 이분법으로 증식한다. 증식 속도가 인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빠르다.

“식중독균 하나만 들어가도 식중독에 걸린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식중독균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실제론 음식 g당 수백만∼수천만 마리의 식중독균이 있어야 식중독을 유발한다. 따라서 식중독균에 가능한 한 증식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학교 급식 HACCP에서 조리에서 배식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려 하는 이유다. 어떤 음식이든 조리 후 4시간 이내에 식사를 마치는 것이 좋다. 그보다 오래 걸린다면 냉장고에 보관하자.

◇O=산소는 식중독균과 인간이 가장 다른 점이다. 인간은 산소가 있어야 산다. 그러나 식중독균은 세 부류로 나뉜다. 산소가 있어야 생존하는 호기성 세균, 없어야 사는 혐기성 세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통성 혐기성 세균이다.

진공 포장을 하는 것은 호기성 세균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한국식품연구원 김왕준 박사는 “진공 포장하면 호기성 세균과 곰팡이가 살 수 없다”며 “햄·쇠고기·돼지고기 등을 진공 포장한 뒤 냉장 보관하면 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대개 1주 이내 보관)에 비해 보관 기간이 1~2주 이상 연장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공 포장하면 혐기성 세균인 바실러스균·보툴리누스균은 오히려 ‘환호작약’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소시지·캔 등 공기가 없는 환경에서 자주 발견돼 소시지 식중독·캔 식중독이라고 불리는 보툴리누스균은 식중독균 중 치사율이 가장 높다.

◇M=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나 식중독균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세균은 곰팡이보다 훨씬 ‘갈증’에 약하다. 건어물 등 마른 식품이 오래 보존되는 것은 이래서다. 가능한 한 습도를 낮춰 식중독균을 괴롭히자.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바나나 농장에선
휴경·묘목관리로 잔류 농약 최소화

HACCP의 ‘FATTOM’중 핵심은 두 T(Temperature, Time)다. 온도를 올려 식중독균을 죽이고 유통시간을 최대한 단축해 식중독균이 번식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채소·과일·김치 등은 식품의 특성상 열을 가할 수 없다. 가열하면 상품성을 잃기 때문이다.

‘열대 과일의 왕’인 바나나도 마찬가지다. 세균 수를 줄이기 위해 소독수로 세 단계에 걸쳐 열심히 씻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

국내 바나나 소비량의 30%를 점유하는 돌(Dole)사의 ‘스위티오’ 바나나 농장의 경우 세균과 곰팡이 방지를 위해 차아염소산 나트륨 2∼4ppm을 첨가한 지하수로 바나나를 씻고 있다. 바나나 겉에 묻은 흙먼지나 바나나를 수확할 때 흘러나오는 유액을 제거하기 위해 물 탱크 안에 담근다.

이때 소독에 사용한 차아염소산 나트륨의 농도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먹는 물 기준인 5ppm 이내다. 열을 가할 수 없는 만큼 시간(T)이 더욱 강조된다.

이를 위해 ‘돌’사는 이동식 포장법(MMBP)을 개발했다. 바나나 채취 후 미니 세척·포장 시설을 갖춘 트럭에서 바로 세척·포장을 실시하는 것.

HACCP 책임자 제롬 페라리스는 “MMBP까지 도입한 것은 수확 후 얼마나 빨리 냉장 창고나 컨테이너로 들어가느냐가 바나나의 품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나나에서 CCP(중점관리기준)로 꼽는 것은 잔류 농약과 이물질. 이 중 잔류 농약은 휴경과 묘목 관리를 통해 최소화한다. 휴경을 실시하면 기존의 나무가 가지고 있던 질병이나 해충이 다음 세대에 전달되지 않으므로 농약을 덜 써도 된다. 또 병충해에 강한 묘목을 육종해 심으면 농약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바나나 등 열대 과일의 운송 도중 배 위에서 수확 후 농약(post harvest pesticides)을 살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공 포장·냉장 기술이 발달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한다. 진공 포장·냉장만 잘 해도 바나나의 녹색 상태가 한 달은 간다. 출항 후 한 달은 지나야 한국에 도착하는 남미산 바나나가 녹색을 유지하는 것이 단적인 증거다. 진공·냉장 상태에선 바나나의 호흡량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포장을 마친 바나나는 컨테이너에 실리기 직전에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야 한다. 2005년 바나나에서 바늘이 발견돼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박태균 기자


식이섬유 ‘펙틴’ 풍부해 변비 예방에 도움
바나나 보관·섭취법

베이징 올림픽 TV 중계 화면에 가장 많이 잡힌 식품은 바나나가 아닐까 싶다. 탁구·배드민턴 선수 등이 틈만 나면 바나나를 까먹는 장면이 포착됐다. ‘미끌어진다’는 의미도 지닌 바나나를 왜 선수들이 선호하는 것일까? 열량이 높고 식이섬유가 풍부해 먹으면 바로 에너지와 포만감을 주기 때문이다. 바나나는 칼륨 함량도 높다. 칼륨은 혈압을 조절하고 근육의 경련을 막아주는 미네랄이어서 운동 선수에게 유용한 측면이 있다(서울여대 식품영양학과 이미숙 교수).

바나나가 ‘변비를 일으킨다’는 속설이 있지만 실제는 그 반대다. 식이섬유의 일종인 펙틴이 풍부해 변비 예방에 효과적이다. 변비로 고생하는 아이에게 바나나·우유·달걀을 함께 믹서에 갈아 마시게 하면 곧잘 낫는다. 단 덜익은 바나나엔 떫은 맛 성분인 타닌이 들어 있어 변비·소화 불량을 유발할 수 있다.

바나나는 수확 후에도 계속 숨을 쉬는 식물이다. 김치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익는다. 그래서 장기 보관은 힘들다. 꼭지가 약간 녹색을 띤 노란 바나나는 4~5일간 실온에서 보관이 가능하다. 구입한 날 바로 먹으려면 완전히 노란 바나나나 검은 반점이 약간 있는 ‘주근깨’ 바나나를 고른다(한림대 식품영양학과 강일준 교수). 당도는 바나나 표면에 검은 반점이 생길 때 가장 높다. 당뇨병 환자는 반점이 없고 끝부분이 약간 녹색인 바나나를 먹되 1개 이상은 곤란하다.

바나나는 온도에 민감하다. 13~16도의 실온에 보관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보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바나나가 충분히 노란색을 띤 후에 비닐 봉투에 넣어 묶은 다음 냉장고의 야채칸에 보관한다. 이러면 껍질은 검어지지만 2주까지는 신선한 상태를 유지한다. 겨울엔 신문지 등에 감싼 바나나를 비닐 봉투에 넣어 묶은 뒤 따뜻한 방에서 보관하면 된다. 냉동 보관 시엔 껍질을 벗기고 과육만 냉동시킨다. 이 과육을 우유와 함께 믹서기로 갈면 달콤한 바나나 셰이크가 만들어진다. 바나나를 빨리 익히고 싶을 때는 사과나 토마토와 함께 갈색 종이 봉지에 하룻밤쯤 놓아 둔다. 사과 등에서 나온 에틸렌 가스가 숙성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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