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가운데서 느리게 살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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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11면

평일 오후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카페에 등장한 윤건(오른 쪽)과 이지린.

이지린은 6년째 채식을 하고 있다. 계기는 단순했다. “스무 살 무렵 우연히 가축을 도살하는 비디오를 봤어요. 큰 충격을 받았죠. 그 뒤부터 밥상에 올라오는 고기가 거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가난한 뮤지션답게 가격이 비싼 순서대로 고기를 끊었다. 쇠고기, 그 다음 돼지고기, 닭고기 순이었다. 그는 채식의 단계 중 해산물은 섭취하는 ‘페스코’다. 그래서인지 영양상태에 크게 문제를 느낀 적은 없다.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 몸이 자연스레 변화되어 갔다. 자극적인 것을 거부하고 순한 성분만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그래서 비누나 화장품, 주방과 욕실의 세제 등을 자연친화적인 오가닉 제품으로 바꿨다. “까칠하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채식이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그동안 모르던 것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당연히 생활 습관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요.”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동물보호 운동의 필요성도 느꼈다. 동물의 털과 가죽으로 만든 옷은 입지 않고, 티셔츠 하나도 유기농 면으로 만들어진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요즘엔 앨범 수익금 중 일부를 지방에 있는 한 유기견 보호센터에 기부하고 있다.

윤건은 최근 들어서야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다. “그동안엔 지구·환경, 이런 문제에 별로 깊은 관심이 없었어요.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거라면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손으로 물건을 들고 다니는 정도.” 음악활동을 하면서 이지린과 가까워지고, 그의 생활방식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영향을 받았다. “물건을 살 때도 지구 환경에 덜 해로운 제품을 선택한다면 그 쇼핑이 조금 더 의미가 있어지잖아요. 이처럼 단순하게 환경 문제에 접근하면 될 것 같아요.”

30여 년을 서울에서만 살아온 윤건이지만 나무·초록·자연, 이런 단어들을 유난히 좋아한다. “시골에 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요. 빌딩 숲 속 작은 화단이 소중한 것처럼 도시에서 우연히 만나는 자연이 더 재미가 있죠.” 3년 전 집을 떠나 작업실을 물색하면서 효자동을 선택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다. “경복궁 인근을 산책하다 집 하나를 발견했는데 주변에 나무도 많고 조용하고, 너무 좋더라고요.”

윤건이 친구와 함께 효자동에 문을 연 카페 ‘숲’. 청와대 인근 주택가에 조용하게 숨어 있다. 문의 02-735-4622

처음 작업실을 꾸밀 때부터 친구들과 커피 한잔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이런 희망을 구체화해 8월에는 친구와 함께 작업실 아래층에 작은 카페 ‘숲’을 오픈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닥에 뿌리를 내린 커다란 스파트필름이 손님들을 맞는다. 몇 개 안 되는 테이블 사이사이 가득 들어찬 허브의 초록 물결에 눈과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환경에 관심이 많다는 점 말고도 두 사람은 ‘낡은 것을 아낀다’는 공통점이 있다. 디지털 카메라 대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모으고, 어렵게 구한 빈티지 가구로 작업실을 장식하기도 한다. “손때가 묻은 것들이 멋스럽잖아요. 새로운 것만을 자꾸 원하는 소비생활이 지구를 더 살기 어려운 곳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앞으로 오래도록 살게 될 서울이라는 도시가 멋진 ‘에코 시티’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도시 안에 산도 많고 멋진 강도 흐르고, 서울은 세계의 그 어떤 도시보다 자연이 가까이 있는 곳이잖아요. 서울이 손때 묻은 멋진 물건처럼 변해 갔으면 좋겠어요.”

on sunday
가족과 함께 잠원동 집 근처 교회에 간다.(윤건)
느지막히 일어나 친구들과 단골 보리밥집에서 브런치를 즐긴다.(이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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