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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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구르몽하면 『낙엽』이란 시가 떠오른다.『시몬 시편』 가운데 하나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여운 낙엽이 되리라….
감성에 젖어드는 시다.
『털』은 보다 관능적이다.
…너는 짐승이 자고 간 뒤의 향기를 풍긴다.너는 정사(情事)의 향기를 풍긴다.너는 불의 향기를 풍긴다….
어머니도 구르몽을 좋아했다.시도 아름답지만 그의 에세이는 어느 모로는 가장 프랑스적인 에스프리의 소산이라 격찬했었다.해박한 지식과 명민한 지성과 섬세한 감성으로 엮어진 『사랑의 자연학』은 그의 시보다 더욱 시적이라는 것이 어머니의 주장이었다.
동물의 암수 성욕을 철저히 추구한 저작이다.
목축 전공의 남편과 살면서 이 책 생각이 나 읽다가 치밀한 관찰력과 대담하고 날카로운 비평정신에 놀랐다.
…여성은 첫 접촉 때 고통을 느끼는 유일한 포유동물(哺乳動物)이 아니다.실은 두더지처럼 수컷을 두려워하며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암컷도 없을 것이다.두더지의 음부엔 체외(體外)로 통하는「문」이 없다.따라서 암두더지가 수두더지와 첫 행위를 하려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수술 도구는 다름이 아닌 송곳을 끝에 갖춘 수컷의 페니스다.
발정기가 되면 수두더지는 땅을 파며 먹이를 구하는 사냥도 잊은 채 암컷을 찾아 헤맨다.
암컷의 존재를 감지(感知)하면 수컷은 「적의(適意)에 찬」 흙을 맹렬히 파헤치며 돌진한다.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암컷은 달아난다.그러나 수컷 또한 암컷을 사로잡는 지혜를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있다.추적하지 않고 포위하는 것이다.더 이상 달아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 후 암컷이 그래도 달아나려고 흙에머리를 박고 있는 틈을 타 「수술」하고 「행위」한다.어떤 인간의 처녀 가 이 암두더지만큼 완강히 정조를 지키려 힘쓰겠는가.
검고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이 작은 암짐승만큼 수치심이 많은 여성이 있을까 싶지 않다.
철학자들은 성적 수치심이란 인공적인 감정이요 문명의 과일이라믿어왔지만 그들은 두더지의 생태를 비롯한 자연계의 섭리에 도무지 무지(無知)하였으므로 이같은 오류를 범했을 것이다….
과연 암두더지만큼이나 필사적으로 우변호사를 피해왔을까,아리영은 되짚으며 새삼 수치심을 느꼈다.결국 도망도 강한 유혹의 몸짓이 아니었던가.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구르몽은 개의 기나긴 얼림에서 인간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보며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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