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식품이야기] 매운 고추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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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철이 다가왔다. 이달 말부터 9월 초까지 충북 괴산 청결고추 축제, 충남 청양 고추 구기자 축제, 전북 임실 고추 품평회, 전북 고창 해풍고추 축제 등이 열린다. 그러나 수확을 앞두고 고추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올여름 계속되는 무더위로 고추 탄저병(고추가 검게 썩는 병)이 번진 탓이다.

매운맛 하면 떠오르는 채소인 고추의 원산지는 멕시코다. 콜럼버스가 전 세계에 소개했다. 우리 선조가 먹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동의보감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우리는 보통 풋고추ㆍ붉은 고추 정도만 알고 있지만 품종은 200가지가 넘는다. 톡 쏘는 청양고추, 시원한 맛의 오이고추, 부드러운 꽈리고추, 유질이 두툼한 아삭이고추 등이 있다.

고추의 대표적인 영양 성분은 비타민 C와 캡사이신이다. 비타민 C 함량은 같은 무게 귤의 5배, 사과의 20배에 달한다. 이 비타민은 노화의 주범인 활성(유해) 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비타민이다. 감기 예방도 돕는다. 고추를 ‘유대인의 페니실린(항생제)’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타민 C가 풍부해서다. 목이 컬컬하고 기침이 나는 등 감기 증상이 있으면 뜨거운 닭국물에 고추ㆍ마늘을 잘게 썰어 넣고 수시로 마시는 것이 유대인의 민간요법이다.

캡사이신은 매운맛 성분이다. 비타민 C처럼 항산화 효과를 지닌다. 또 지방을 분해하는 등 다이어트에도 유용하다. 이 때문에 고추가 든 한국 음식이 일본에서 다이어트 음식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스트레스 완화 효과도 기대된다. 입 안이 화끈거리고 속이 쓰릴 만큼 매운 음식을 땀 흘리면서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고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는 사람이 많다. 고추의 캡사이신을 섭취한 뒤 느끼는 매운맛은 혀에 가해지는 일종의 통증이다. 이 자극이 대뇌에 전달되면 대뇌에선 통증에 대처하기 위해 자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분비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이 엔도르핀이 기분을 좋게 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이다.

캡사이신은 혈액 순환도 돕는다. 고추를 먹으면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은 캡사이신이 모세혈관의 혈액 순환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고추를 곁들이면 좋다. 혈전(피 찌꺼기) 예방에도 유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운 음식을 즐기는 사람 가운데 혈전 환자가 드물다는 것이 간접적인 증거다.

캡사이신은 고추의 과피에도 소량 있지만 대부분은 태좌(胎座·씨가 붙는 부위)에 몰려 있다. “고추를 다듬을 때 태좌를 버리지 말라”는 건 이 때문이다. 풋고추보다 빨갛게 익기 직전의 고추에 캡사이신이 더 많다.

캡사이신은 체내에서 거의 흡수되지 않는다. 따라서 고추가 입ㆍ식도ㆍ위ㆍ장을 거쳐 항문으로 배설될 때까지 통과하는 모든 부위에 자극을 주므로 위장 장애ㆍ치질이 있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특히 한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위장 점막이 헐고 혈관이 수축될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고추의 매운맛을 줄이기 위해 찬물을 들이켜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일시적인 효과에 그친다. 이보다 우유ㆍ요구르트를 입 안에 머금으면 매운맛이 가신다. 맥주도 매운 맛을 완화하는데 이는 캡사이신이 알코올에 녹기 때문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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