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7代 이 사람을 주목하라] 3. 한나라 박형준 당선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고려대 78학번인 그는 운동권 출신이다. 대학 시절 그는 '고대문화'의 편집장을 하면서 몸과 머리로 독재정권에 저항했다.

졸업 후 중앙일보 기자 생활을 3년간 한 그는 1987년 좌파 성향의 학술단체인 한국사회연구소(한사연)를 만들었다.

이사장은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박현채 교수. 사회 변혁을 내건 한사연은 당시 초선인 노무현.이해찬 의원을 도왔다. 두 의원을 위한 강연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나 정보화.세계화에 눈뜬다. 이후 시민운동에 심취해 93년에는 부산 경실련에서 일했다.

YS정권의 개혁 초기 박세일.이각범 수석의 권유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으로도 위촉됐다. 반면 盧대통령은 이때 DJ와 손을 잡았다. 그와 盧대통령은 그렇게 소원해졌다.

박형준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 그는 17대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 수영구에서 당선했다. 과거를 아는 사람들은 개량주의자라고 비판한다. 그는 항변하지 않았다. "나는 더도 덜도 아닌, 개량적 실용주의자"라고 했다. 하지만 왜 한나라당이었을까.

"당선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또 YS 정권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실패 책임을 나눠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하다. 하지만 그 게 다는 아니었다. 그는 "역사적 과오는 있지만 한나라당에는 민주세력이 담을 수 없는 발전세력의 전통이라는 또 다른 그릇이 있다. 한나라당을 건전한 보수세력으로 재편하는 것은 민주세력의 집권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 20일 수도권 소장파들과 만나 당 개혁 등을 논의했다.

야당 초선이 되는 그는 盧대통령에게 충고 섞인 비판도 했다. 관념은 80년대 민주화운동에 머물면서 실제 국가 경영은 그것만으로 안 되다 보니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혼란을 지난 1년간 초래했다고 했다.

이제는 집권세력 전체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라는 역사적 기억을 뛰어넘어 국가 경영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17대 국회에 그는 문광위와 교육위를 지망한다. 각 세대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문화국가전략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80년 5월 교내에서 시위를 하다가 최루탄에 맞아 오른쪽 눈을 다쳤다. 그는 지금 왼쪽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우익의 개량을 꿈꾸고 있다.

박승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