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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로 보는 세상] 가슴이 콩·콩·콩…사랑에 빠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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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에서 사랑만큼 질긴 생명력을 갖는 주제가 있을까. 게다가 사랑은 그리움·설렘 따위의 애틋함뿐 아니라 불안·질투·미움·후회·용서까지도 거느리는 미묘하고도 복잡한 삶의 감정이다. 그러니 작가나 독자들이 사랑이라는 주제에 매혹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요즘 아이들이 족보까지 훤히 꿰차고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핵심 코드는 사랑이다.

▶ 『멋진 내 남자 친구』의 주인공 ‘목우’는‘바다’를 좋아하면서도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녀의 주변만 맴돈다.

문제는 사랑이란 그것을 겪는 이에게는 언제나 새롭게 시작되는, 알 수 없는 경험이라는 점이다. 누군가 불쑥 가슴속으로 들어와 소용돌이를 일으키게 되면, 그 파장이 어디로 퍼져나갈지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정답이 없는 것이다.

2004년 안데르상 수상자로 선정된 네덜란드 작가 막스 벨튀이스의 그림책 『사랑에 빠진 개구리』는 멍한 표정으로 강둑에 앉아 있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로 시작된다. 개구리는 알쏭달쏭 이상한 마음의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자기가 행복한 것인지 슬픈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온종일 꿈속을 걷는 것처럼 몽롱하면서, 웃고 싶기도 하고 울고 싶기도 하다. 심지어 몸까지 뜨거웠다 차가웠다 하면서 가슴속에서 뭔가가 콩, 콩, 콩 뛰고 있다. 개구리의 고민을 들은 토끼는 커다란 책을 펼치고 뒤지더니 그 이유를 찾아낸다. 개구리는 지금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개구리가 사랑하는 대상은 예쁘고, 상냥하고, 마음씨 착한 오리다. 그러자 꼬마 돼지가 고개를 갸웃한다. “너는 초록이고 오리는 하양이잖아.” 꼬마 돼지가 무심코 던지는 이 질문이 실은 대단히 함축적이다. 사랑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고유한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상대방을 자신의 조건에 맞추려 하지 않고 내가 그에게 다가가는 것, 그것이 사랑의 자세다.

그날부터 개구리는 오리를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다. 마음의 온갖 빛깔을 담아 멋진 그림을 그리고, 향기로운 꽃을 꺾어다가 오리가 사는 집 문 앞에 살그머니 놓아둔다. 하지만 고백하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다.

개구리는 뜬눈으로 며칠 밤을 지새우다가 기발한 생각을 해낸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개구리는 높이 뛰어오르기 연습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어떤 개구리도 그렇게 뛰어오른 적이 없을 만큼 높이. 그러다가 지금까지 연습한 중에서 가장 높이 뛰어오른 날, 그만 사고가 나고 만다. 구름까지 닿을 정도로 높이 올랐다가 떨어지면서 땅에 거꾸로 처박히고 만 것이다. 한마디로 사랑의 단맛, 신맛, 쓴맛을 다 보고 난 뒤에 개구리는 오리의 사랑을 얻게 된다. 요컨대,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자만이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애의 창작동화 『멋진 내 남자친구』는 이성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작가의 동화가 드물다는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끈다. 열세 살 여자아이 바다는 같은 반 친구인 동준이를 남몰래 좋아한다. 웃음 짓고 있는 동준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이상야릇해지면서 가슴 속에서 수많은 전구가 환하게 켜지는 것 같다. 이건 엄마·아빠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이다. 하지만 잘생긴 동준이는 언제나 많은 여자아이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동준이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바다에게 목우가 다가온다. 목우는 까무잡잡한 얼굴과 껑충한 키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속이 깊고 배려심이 많은 목우의 장점들이 조금씩 바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바다가 목우를 마음 속에 받아들이는 과정과, 서로 밀고 당기는 심리묘사가 그럴듯하다.

이야기의 얼개가 상당히 짜임새있고, 요즘 사춘기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민과 갈등을 미세하게 잘 그려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한 감각적인 문장들은 때론 아슬아슬하다. 화자의 감정이 잔뜩 실린 “보랏빛 놀을 등진 작은 기린, 목우” 같은 표현들은 왠지 인스턴트 시대의 광고 카피를 연상케 한다. 사랑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여운과 울림이 약해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어른들 눈에는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아이들도 사랑이라는 문제에 대해 꽤나 심각하고 진지하다. 사랑이 기쁨만이 아니라 가장 큰 슬픔을 낳을 수 있다는 삶의 아이러니를 알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몸과 마음의 키가 성큼 자라난다.

오석균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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