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국의 '영해욕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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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 놓은게 누군가.미국과 소련이다.한국분단은 미.소(美.蘇)가 주도한 얄타체제의 한 산물이다.그렇다면한국의 분단상태를 해소하는 거사(擧事)가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의 참여없이 가능한 일인가.
4자회담안은 분단당사국들이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그것을끝내는 정전협정에 참여한 당사국 중심으로 한국문제를 해결한다는발상이다.분단해소의 주체가 얄타에서 판문점으로 옮겨진 꼴이다.
한국은 러시아더러 한반도문제에서 따돌림을 감수하라고 설득하려다 거절당했다.러시아 외무장관은 모스크바를 방문한 한국의 외무장관에게 4자회담을 제의한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 그것을 방해할생각은 없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졌다.그것은 분명 히 완곡한 거절이고 예상되던 일이다.
우리의 외교정책수립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의 지평(地平)은 아직도 냉전시대의 틀안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미국과 소련을 축(軸)으로 전개되던 냉전시대의 국제관계는 단순한구도(構圖)여서 한국은 미국의 든든한 등에 기대 있으면 대개의문제는 해결되었다.
지금의 사정은 어떤가.미국과 일본이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강화하는 새 안보관계를 선언하자 중국이 긴장했다.보리스 옐친이 중국으로 날아갔다.미국의 독점적인 헤게모니와 일본이 군사대국화하는 것을 견제하는데 이해를 같이하는 두 북방대국 의 공조(共助)가 확인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과 중국은 지적재산권 협상 결렬을 계기로 「무역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긴장관계로 들어갔다.한국과 일본관계는 독도와 과거청산문제로 만성적인 엉거주춤한 상태에 있다. 냉전종식후 동북아시아 힘의 역학관계는 이렇게 복잡하다.그런데 한국외교는 미국.일본과의 대북(對北)공조에 매달려 러시아의 불만을 자극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한국.러시아 관계에서 한국에 실망하고 있었다.
한국은 91년1월 소련과 30억달러의 차관협정을 체결했다.산업은행을 포함한 뱅크론 10억달러,한국상품을 수입할 소비재차관 15억달러,그리고 한국에서 설비를 연불로 수입할 차관 5억달러가 그 내역이다.
그러나 소련붕괴후 한국은 14억7천만달러를 제공한 상태에서 러시아측의 차관상환의 연체를 이유로 추가차관을 중단했다.그것은서독이 독일통일전에 7백억달러의 원조를 소련에 제공한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소련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과는 반대로90년9월 수교(修交)를 먼저하고 4개월후 차관협정을 체결했다. 한.소(韓.蘇)수교가 그 뒤의 한.중(韓.中)수교에 미친 영향과 심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북한을 견제한 효과를 생각하면 한국이 소련에 약속한 30억달러나 실제로 제공된 14억7천만달러는 흥정이 아주 잘된 「안보비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세세한 계산을 떠나 러시아가 한반도에 갖고 있는 지정학적인 이해(利害)를 봐도 러시아의 이해를 구하는 사전준비 없이4자회담을 양해하라고만 요구하는 것은 너무 일방적이다.
주변국가들이 한국의 통일을 받아들일 것인지,통일된 한국에서 누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지가 21세기 동북아 새 질서의 핵(核)이다.그래서 한국문제에 대한 주변 4강의 이해가 제 각각이고 그들과 한국의 이해가 틀리는 것이다.
러시아가 그 점을 놓치겠는가.
슈퍼 파워는 쉽게 소멸되지 않는다.러시아는 동북아의 새 질서를 세우는데 큰 균형추로 작용할 것이고 통일을 포함한 한반도문제해결에서 결코 소외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을 제외한 「2+3」을 들고 나와도 놀랄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친서를 옐친에게 전달하지 못한 것을 놓고 벌이는 정치공방은 바다를 모르는 개구리들의 우물안 입씨름같다.중요한 것은 이 지역문제 전체의 틀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위치를 제대로평가해 한.러 관계를 러시아카드로 강화하는 일이 다.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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