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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맨해튼의 대만古미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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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토요일이면 중국 고미술품의 최고진미를 외국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지게 된다.지난 3월중순부터 뉴욕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중국문화의 영화(榮華)」 특별전이 일단 막을 내린다.
1년동안 미국내 주요도시를 순회전시할 계획이지만 작품배열이나전시환경 등에 비추어 뉴욕전시만 못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이번 전시가 주목받은 것은 작품의 가치가 뛰어난 데도연유하지만 대만해협의 긴장고조 당시 대만 고궁(故宮)미술관의 최우수 작품들을 미국에서 선보인 시점도 한 이유가 되고 있다.
4백75개 품목의 최고작품들이 외국전시에 나선 선례가 없을뿐 아니라 대만 입법원에서 3백만달러이상의 지원금을 선뜻 내놓은 점에 비추어 문화외교를 앞세운 대만정부의 정치적 고려가 가미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전시는 5년이상의 교섭끝에 성사된 것이며 일등 공로자는 프린스턴대학 고고미술학과 교수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아시아담당 총책임자인 팡 원(方聞)이다.48년 상하이(上海)에서 이민와 중국회화사 관련 미국내 유수학자들을 키워낸 장본인이다.
미국측에서 보면 전시를 성사시킨 일등공신이지만,지난 1월 대만에서 벌어진 중국고미술 해외전시에 반대시위를 벌였던 측에서 보면 역적과 같은 존재다.해외전시 반대자들은 대만에서도 3년에40일간만 일반에 공개되는 최고진품들을 1년이상 미국순회 전시에 내놓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시를 추진했던 고궁박물관측과 미국내 주관인사들은 이번 시위가 대만인들의 뿌리깊은 정체성(正體性)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조심스런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전시회는 대만총통선거 나흘전에 개막되었고 총통선거는 중-대만관계와 관련, 「통일」과 「독립」이라는 두 가지 역사적 과제 사이에서 뚜렷한 결론없이 미래의 숙제를 남겼다.
원 펑교수는 『미국과 대만간에 정치적 문제를 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문화유산의 미국전시는 대만의 정체성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입장이다.그러나 해외전시를 반대했던 대만인들의 정서는 48년 당시 중국본토에서 이송해 온 고궁박물관 소장 문화유산과의 단절이 본토로부터의 정치적.정신적 독립을뜻한다는 주장을 앞세운다.
전시장을 찾는 이방인들에게는 중국문화의 영화(榮華)와 만나는다시 없을 기회지만,통일과 독립사이에서 고민하는 대만인들에게는단순히 문화행사가 아니라 「과거의 포용」과 「과거로부터의 탈피」를 넘나드는 심리적 갈등을 촉발한 행사였다.
길정우 在美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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