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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과학·수학의 벽 못넘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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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전문 직업 세계에 있어서도 '절반의 몫'을 하는 시대가 오기를 고대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여성 국회의원 수가 16대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 13%를 기록하고, 여성 당 대표가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고 보니 급작스러운 변화에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올해 미국 하버드대의 입학허가서를 받은 학생 중 여학생 비율이 더 높다는 기사가 신문의 한 면을 장식했다. 국내 유수 대학의 신입생이나 자격고시 합격자의 여학생 비율도 한 해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녀공학의 상위권은 거의 여학생이 독점하기 때문에 아들을 둔 부모는 남학교에 배정받기 위해 주소를 옮기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생각은 남아에 비해 여러 면에서 조숙한 여아가 초등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지만 중학교에 이르면 반전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젠 끝까지 반전이 일어나지 않거나 반전 시기가 점차 늦어지고 있다.

최근 여학생의 성취도가 높아진 현상의 원인을 몇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젊은 부모들은 딸을 전문직 여성으로 키우려는 진취적인 의식을 갖고 있으므로 과거 세대와 달리 딸의 학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또 여학생은 남학생에 비해 컴퓨터 게임과 같은 학업의 방해요소에 탐닉하는 정도가 심하지 않다. 또 하나의 호재는 다양한 수업과 평가방식의 도입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요즘 학교에서 강조하는 소집단 협력학습, 의사소통 능력, 수행평가 실시, 구체적인 조작물과 시각화 자료 도입 등은 여성의 사고양식과 성향에 잘 부합된다. 여학생의 선전은 이런 요인들이 복합된 결과다.

이처럼 전반적인 성취도에서는 여학생의 약진이 두드러지지만 과학과 수학의 벽은 뛰어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2000년 실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관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우리나라의 과학과 수학 성취 수준은 1위와 3위였지만, 수학과 과학 성취도의 성별 차이도 커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성적표다.

대부분의 사람은 과학과 수학은 남성의 분야라는 통념이 있다. 이런 통념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우선 생물학적으로 볼 때 여성과 남성은 두뇌 기능에서 차이를 보인다. 물론 성별 '내'의 개인 차이가 성별 '간'의 차이보다 크다는 점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대개 여성은 언어 능력을 관장하는 부분이, 남성은 공간지각력이나 수리능력에 직결되는 부분이 발달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 흐름에 따라 성취도의 성별 차이가 감소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선천적인 생물학적 차이가 결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 밖에 사회화 과정과 같은 후천적인 요인도 성별 차이를 조장한다. 남학생은 과학과 수학에 대해 주변에서 높은 기대를 받기 때문에 자성적 예언을 통해 스스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만 여학생은 과학과 수학을 못 해도 용인되는 사고에 길들여져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꽃피우지 못하게 된다.

과학.기술.공학.수학의 앞자를 따면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이 된다. STEM의 사전적 의미인 '나무의 줄기'처럼 이 네 분야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근간(根幹)이다. 미국은 STEM 분야에 대한 여학생의 참여와 학습을 고양시키기 위해 10년 동안 400여 연구에 9000만달러의 연구비를 쏟아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공계 여성인력 양성을 위한 WISE를 비롯해 여러 정부 부처와 연구소에서 과학과 수학의 성별 차이를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한 국가의 인력 수준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성의 조화에 의해 결정됨을 생각할 때 국가 인력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성별 차이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양성평등 교육을 이루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 수학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