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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씨 조선시대 법의학서 번역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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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곱단이 혼례식을 사흘 앞두고 의문의 변시체로 발견됐다.고을검시관이 달려왔다.시신을 훑어본 검시관은 원인불명의 급사인 것같다고 진단했다.그러나 뒤따라 도착한 이웃 고을 검시관의 의견은 달랐다.그는 곱단 어미의 은비녀를 빌려 시신 의 목에 깊숙이 꽂았다 뺐다.비녀는 까맣게 변색됐고 곱단은 비상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조선시대 검시법의 한 장면.
선조들의 검시법을 수록한 조선시대의 법의학 교과서 『무원록(無寃錄)』이 원로 법의학자 문국진(文國鎭)박사에 의해 처음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영조 24년 검시관 구택규(具宅奎)가 쓴 원문을 번역한 이 책자에선 시신에 칼을 대지 않는 우리 고유의 풍속이 검시과정에서도 엄격히 지켜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곱단의 의문사에 쓰인 은비녀법도 대표적인 검시법중 하나.
이는 은과 화학반응해 검은색 비산은을 만들어내는 비소의 특성을 응용한 것으로 지금도 이용되고 있을 정도로 과학적인 방법이다. 나미법(나米法)이라 불리는 일종의 동물실험도 사용됐다.
계란 흰자위를 넣고 찐 찹쌀(나미)을 시신의 입에 넣어 의심되는 독극물을 흡착시킨 뒤 이를 닭에 먹여 중독여부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현행 부검제는 검시전문가가 아닌 검사의 지휘아래 단 한차례로끝나지만 조선시대엔 삼검법(三檢法)이 적용됐다는 것.
2명의 서로 다른 고을 출신 검시관이 독립적으로 검시한 뒤 상급기관에서 최종판정을 내리는 것으로 이견조정이 안될 경우 최고 여섯번까지 검시해 졸속 검시로 인한 부정확성을 최소화했다는것으로 오늘날 한번쯤 음미해볼만한 대목이라 하겠 다.
홍혜걸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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