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홀브룩 칼럼

흑해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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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쟁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 남오세티야, 그루지야는 자신들의 입장만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지원하는 남오세티야 분리주의자들이 그루지야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루지야는 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침략은 정당화될 수 없다. 러시아는 불법적인 무력행동으로 유엔선언, 헬싱키선언을 비롯한 유럽안보협력 원칙 등을 무시했다. 러시아는 전쟁 도발 직전 그루지야 정부와 언론의 웹사이트를 마비시키고 올림픽 개막식에 맞춰 공격을 시작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 올림픽 기간에 전쟁을 벌여 고대 그리스에서도 지켰던 휴전 원칙을 깼다.

러시아는 2014년에 소치에서 겨울올림픽을 개최한다. 전쟁이 일어난 츠한발리는 소치로부터 불과 40㎞ 떨어진 곳이다. 러시아는 이제 올림픽 정신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더구나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전쟁을 일으킨 점으로 보아 러시아는 다음 미국 대통령과 그루지야의 관계를 방해할 계획이었다.

남오세티야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러시아의 목표는 단순하지 않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의 정권교체를 원한다. 친미 성향의 사카슈빌리 대통령을 퇴출시키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세우려 한다.

러시아는 주변국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나 유럽연합(EU)의 확대를 억제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려 든다. 러시아가 새로운 정책을 고수한다면 유럽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는 다시 평가돼야 한다. 아무도 냉전시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는 세계 질서에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째, 그루지야를 지원해야 한다. 그루지야는 미국을 위해 이라크전에 2000명 이상의 병력을 파병했다. 셋째로 많은 파병 규모였다. 미국은 그루지야 영토를 보호하고 분쟁을 멈추게 해야 한다. 이제 전화(戰禍)를 입은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를 복구하기 위해 미국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둘째, 러시아군을 중립적인 평화유지군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러시아는 분쟁 조정국이 아니라 분쟁 조장국이다. 그들은 제국주의 정책을 외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러시아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유엔 아래에서 정당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셋째,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같은 우방 국가에 주목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세력 확대를 위해 그루지야의 다음 목표로 지정해 둔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과 EU는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를 확실한 우방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EU는 러시아의 이번 침략이 서로의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아무도 21세기형 냉전체제를 원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유럽과 미국에 아직 복잡한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러시아는 그들의 행동이 소치 겨울올림픽 같은 행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전쟁을 막지 못했다. 이는 약한 서방의 외교력과 엉성한 유럽·미국의 협력 관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강한 유럽·미국 관계만이 전쟁을 막고 피해를 복구할 수 있다. 

리처드 홀브룩 아시아소사이어티 이사장·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로널드 어즈무스 전 미 국무부 부차관보 공동 집필)

정리=김민상 기자